"회사 그만 다니고 싶은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렵지만, 일본에는 조금씩 늘어가고 있는 새로운 서비스가 있다면 퇴사 대행 서비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퇴사 희망자를 대신해 퇴직 의사를 회사에 직접 전달하고 절차를 밟아주는 곳인데요. '그냥 나오면 되지 뭘 돈 주고 맡기느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일본 전역에는 벌써 이 서비스 대행 회사만 100곳이 있다고 하네요. 일본 언론도 신기하기 때문에 보도하는 중이긴 한데, 그래도 100곳의 업체가 있을 정도면 꽤 자리 잡고 있는 문화인 것 같죠.
최근 일본의 퇴사 대행 서비스 업체가 이용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흥미로운 지점도 있어서 오늘은 일본의 퇴사 대행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얼마 전 닛케이에 따르면 퇴사 대행 서비스 '모무리'는 이용자 1만6000명의 데이터 분석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모무리는 일본어로 '이제는 무리'라는 뜻인데요. 일단 이 회사는 2022년 사장 1명이 창업해 시작한 회사인데, 지금은 종업원 수가 50명이 넘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365일 24시간 3교대로 종업원들이 돌아가며 의뢰를 받고 있다고 하네요. 이곳의 경우 정규직 사원이 퇴사할 경우 서비스 요금은 2만2000엔(20만원), 아르바이트생은 1만2000엔(10만8000원)을 받는데, 실업급여나 각종 퇴직수당 등 몰라서 못 찾는 돈까지 싹 다 받아주며 퇴사 절차를 마무리해준다고 합니다.
24시간 체제인 이유는 서비스 의뢰 시간이 심야나 이른 아침이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돌아와서 밤늦게까지 자지 못하고 퇴사를 고민하고, 아침에 출근 준비는 했지만, 도저히 나갈 용기가 없다는 것인데요. 어떻게 보면 공감 가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서비스의 연령별 이용자 수는 20대(60.9%)와 30대(22.4%)가 80%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40대는 8.4%, 50대는 2.9%로 나이가 들면서 이용자는 줄어드는 추세였는데요. 다만 최고령 이용자는 71세, 최연소 이용자는 15세로 연령 폭이 넓었습니다. 15세 이용자는 "아르바이트를 어떻게 그만두어야 할지 방법을 모르겠다"고 상담을 신청했었다고 하네요.
근속연수별로는 입사 후 1년 이내가 전체의 75%를 차지했고, 1~3년은 15.3%, 3년 이상은 9.7%였다고 합니다. 대부분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퇴사한다는 것인데요. 특히 올해 주목을 받은 것은 입사 당일 퇴사 신청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전에 취업이 결정되는 일본에서는 4월 1일에 대부분 신입사원이 입사하는데요, 이 4월 1일 당일에 퇴사 대행을 의뢰한 사람이 4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 일본의 5월 황금연휴가 끝난 다음에는 76명이 신청했다고 합니다.
퇴직 사유로 가장 많았던 것은 '입사 전 계약 내용·노동조건과 근속실태의 괴리'였다고 합니다. 채용 과정에서 기업에서 이야기한 사내 문화, 근무 조건 등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라는 건데요. 머리 염색이든 뭐든 상관없이 자유로운 분위기를 강조한 회사에서 머리를 검은색으로 염색하지 않으면 출근할 수 없다고 통보한다거나, 야근 같은 것은 없다고 강조한 곳에서 야근이 비일비재했던 것이 이유였다고 합니다.
6월부터는 직장 내 인간관계로 퇴사 대행 서비스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특히 성희롱이나 성폭력에 노출됐을 경우 피해자가 직접 사직 의사를 밝히고 모든 과정에 대응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대행 서비스가 직접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실제로 서비스 사용자 중 30.2%가 '윗선에서 평판이 나빠지는 것을 두려워해 퇴사를 만류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또 의료나 요양 서비스 등 교대 근무로 업무 강도가 큰 곳의 경우 동료들의 얼굴 보기가 미안해서 대행 서비스 신청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네요. 대행 서비스 의뢰가 특히 많이 들어오는 기업의 경우 아예 '퇴직 대행 서비스 담당' 직원까지 부서에 새로 배치해 대응하는 곳도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물론 일본 내에서도 퇴사 대행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평가가 나뉘는 편입니다. 일본 구글에서도 퇴사 대행을 치면 연관 검색으로 '(쓰는 사람) 이상하다' 등이 검색되곤 하는데요. '일반적인 퇴사 방법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그만두는 것은 무책임하다' 등의 의견이 있습니다. 다만 몇번이나 사직서를 제출해도 수리되지 않는 경우, 직장 스트레스로 우울증 등을 겪고 있는 경우, 후임자 찾을 때까지만 일해 달라고 연기하는 경우 등도 있기 때문에 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심정도 이해가 갑니다.
모무리 서비스 관계자는 "일단 입사하면 참고 일할 거라는 구시대적 발상은 Z세대 젊은이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는데요. 우리나라엔 아직 없는 신기한 서비스인데 어떠신가요. 이용할 의사가 있으신가요?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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