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랜드' 디지털 페르소나 세계
남겨진 이들에게 새로운 선택지
관건은 죽음 인지…영화엔 이정표 없어
영화 '원더랜드'에서 제목은 고인을 인공지능(AI)으로 복원하는 영상통화 서비스 이름이다. 디지털 페르소나 세계를 펼쳐 가족, 연인 등의 재회를 돕는다.
낯선 설정은 아니다. MBC VFX 특수영상팀에서 2020년 '너를 만났다'를 제작해 선보였다. 혈액암으로 일곱 살에 세상을 떠난 딸을 어머니가 다시 만나게 했다. 카메라 160대로 3D 스캐닝을 작업해 딸의 신체 틀을 만들고, 모션 캡처로 움직임을 구현했다. 또래 아이 다섯 명의 목소리로 800문장씩을 녹음하고 딥러닝 학습을 진행해 목소리도 재현했다.
결과적으로 상호작용은 조금 부자연스러웠다. 아바타 대역 연기자를 현장에 세우지 않은 데다 대화를 딸이 주도해서다. 하지만 어머니는 북받치는 감정과 눈물을 억제하지 못했다. 이듬해 제작된 '너를 만났다 2'에서 사별한 아내를 다시 만난 남편도 다르지 않았다. 뜻밖의 재회가 남은 가족과 지인들에게 또 다른 어려움을 주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아끼던 사람의 죽음은 슬픔, 외로움, 불안 등을 유발한다. 남겨진 자가 받는 가장 큰 스트레스이자 고통이다. 영국 심리학자 존 볼비는 사랑하는 이와의 사별로 일어나는 정상적인 애도 과정을 네 단계로 분류했다. 첫째는 무감각한 쇼크, 둘째는 다양한 감정이 곁들여진 그리움, 셋째는 상실을 수용하면서 겪는 우울과 의욕 저하, 넷째는 회복 및 삶의 재구성이다. 개인에 따라 어떤 단계는 생략되거나 반복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2~4개월이 걸린다.
남겨진 이들에게 AI 복원을 통한 교류는 분명 새로운 선택지다. 그러나 고인과의 재회는 자칫 극단의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AI가 정상적인 애도 과정을 촉진하는 긍정적 매체 역할을 할지, 아픈 기억을 재생산하고 증폭해 일상으로의 복구를 방해하는 장애물일지는 더 많은 사례를 지켜봐야 가늠할 수 있다.
아쉽게도 '원더랜드'는 관련 통찰에 어떤 이정표도 제시하지 못한다. 크게 두 가지 사례를 펼치는데 한쪽은 디지털 페르소나가 주인공이고, 다른 한쪽은 이야기가 인위적으로 전개된다. 상실에 빠진 이의 애도 과정 통과에 도움을 줄 만한 사례도 없다시피 하다. 원더랜드를 개발·운영하는 이들 또한 재회를 유도하고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데 몰두해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AI가 새로운 애도 위기 개입자 또는 그 보조 도구로 현장에서 활용될 가능성이다. 관건은 고인과의 기억을 과거 시제 안에서 어떻게 자리 잡게 하느냐다. 작위적 이야기로 질주하기에는 아직 맞닥뜨려야 하고 풀어야 할 불안과 우려가 곳곳에 깔려 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김어준 '한동훈 사살' 주장에…권성동 "제보 자체...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