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개편 어떻게]②대기업 최고세율 낮추고, 최대주주 할증 없애야
물가·집값 상승에도
24년째 안 변한 상속세 체계
5단계 세율 구조 축소해야
기업의 상속 부담을 실질적으로 완화하려면 물가와 집값 상승에도 24년째 유지된 상속세 체계를 전면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상속세 개편이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중산층 부담은 물론 기업 가치 제고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과세체계의 합리화를 위한 유산취득세로의 전환만이 아니라 상속 세율과 구간을 전면 재설정하고 할증 프리미엄 제도 폐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개최한 민생토론회에서 “상속세가 과도한 할증 과세라는 데 국민적 공감이 필요하다”며 상속세 개편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 이후 과도한 상속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해 12월 발간한 ‘수출기업의 원활한 가업승계를 위한 제언’ 보고서에 따르면 세금 문제 등으로 가업 승계 대신 매각이나 폐업까지 고려했다는 기업들이 42.2%에 달했다.
24년째 변동 없는 상속세 체계..."물가 반영 안 하는 건 사실상 증세와 다르지 않아"
전문가들은 기업과 중산층의 높아진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과세체계의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000년 상속세 최고세율이 45%에서 50%(최대 주주 60%)로 상향되고 과표구간이 ‘50억원 초과’에서 ‘30억원 초과’로 낮아진 것을 제외한 이후 약 24년 동안 별다른 변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상속세율은 ▲1억원 이하 10% ▲1억원 초과~5억원 이하 20% ▲5억원 초과~10억원 이하 30% ▲10억원 초과~30억원 이하 40% ▲30억원 초과 50% 등 5단계로 구분된다.
강성훈 한양대학교 정책학과 교수는 “매년 물가가 오르는 상황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의 증세”라면서 “매년 상속세를 내는 인원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적어도 물가가 오른 만큼의 상승분을 반영해 세율이나 과세표준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성욱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의 ‘상속세 세율 및 인적공제에 관한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2000년 최고세율 적용구간인 30억원을 2021년 가치로 추정하면 48억6000만원에 이른다. 초고액 자산가가 부담하는 세금으로서의 상속세 의미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체 피상속인 중 2.24%만 상속세를 부담했는데 2022년에는 그 비율이 4.52%로 높아졌다. 박 교수는 현재의 5단계로 나누어진 세율 구조를 4단계로 축소하고, 최고세율을 현행 50%에서 40%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삼성 등 대기업의 지나치게 큰 상속 부담 문제를 해결하려면 세구간 조정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기업 대주주는 과표구간 중 가장 높은 구간에 위치하기 때문에 구간 조정 등에 따른 영향을 받지 못한다. 삼성 최대 주주가 납부해야 하는 상속세는 약 1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수십억원을 깎아준다고 해도 상속 부담을 완화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세 부담 완화를 위해선 최대 주주 할증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대 주주 할증 과세는 최대 주주의 주식을 상속받으면 해당 지분의 평가액의 20%를 ‘경영권 프리미엄’ 명목으로 더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주요 상장 기업의 의사결정을 좌우할 수 있는 주식에 대해 가치를 높게 보고 할증 과세를 하는 제도다. 예컨대 1억원으로 평가받은 주식이 상속 대상 주식일 경우 해당 가치보다 20%의 가치가 더 있다고 평가한다.
"대기업에 최대 주주 할증 과세 적용 폐지해야" vs "가치 큰 지분에는 할증 평가 불가피"
박훈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교수는 20%라는 할증률 평가의 합리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회사에 따라서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20%가 더 붙은 1억2000만원이 아니라 1억3000만원이나 1억4000만원이 될 수가 있다”며 “하지만 한국은 그저 형식적으로 일률적 기계적으로 (20% 할증으로) 적용하고 있어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소·중견 기업은 아예 할증 과세를 폐지한 상태인데 상장 대기업도 마찬가지로 제도를 적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경우 상속주식을 평가할 때 할증 평가 규정이 없다. 공정시장가액을 원칙으로 한다. 기업의 서로 다른 특성을 고려해 기업별 상황에 따라 평가를 진행하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세법 전문가는 “미국은 한국과 달리 법원이 주식 가치를 그때그때 감정평가하듯이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대기업의 지배지분은 사회경제적으로 높은 가치가 있는 만큼 할증 평가가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있다. 윤지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평가 방법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과세를 위해 입법 기술적으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재벌기업의 경영권이 있는 지배지분은 사회경제적으로 큰 가치가 있는 자산인 만큼 할증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시장에서 기업 경영권을 거래할 때 최대 주주 지분을 시세보다 비싸게 사주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존재하는 만큼 물려주는 재산 가치를 시가로 평가해야 한다는 법적 원칙에 따라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에 할증을 적용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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