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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구식 반도체' 쓰나미가 두려운 이유 [테크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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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공정으로 만든 레거시 반도체
사실상 모든 제품에 쓰이는 산업의 쌀
중국·대만이 전 세계 70% 장악 예정
중국산 '저가 공세' 재현 우려 커져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일명 '레거시 반도체(구식 반도체)' 시장 현황 파악에 나서면서 업계에 또 다른 지각변동이 예고됐습니다. 레거시 반도체는 미·중 패권 경쟁에선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염가 반도체입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 특히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은 첨단 반도체보다 더 결정적입니다.


성숙 노드 공정 쓰는 '레거시 반도체'
28나노미터 이상의 노드로 제작된 반도체를 레거시 반도체라고 칭한다. [이미지출처=TSMC 홈페이지]

28나노미터 이상의 노드로 제작된 반도체를 레거시 반도체라고 칭한다. [이미지출처=TSMC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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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반도체 업계는 흔히 '선단 반도체'와 '레거시 반도체'로 나뉩니다. 선단 반도체는 최첨단 초미세 공정으로 만들어진 반도체로, 주로 스마트폰이나 인공지능(AI) 컴퓨터 칩, 메인 메모리 반도체에 쓰입니다. 레거시 반도체는 이미 성숙한 공정 기술로 만들어진 반도체입니다.

무엇이 선단이고 무엇이 레거시인지 나누는 기준이 확고히 정해진 건 아닙니다. 다만 업계에선 보통 28나노미터(㎚) 이상의 노드 크기를 성숙 반도체로 보고, 10㎚ 이하 공정으로 만들어지면 선단 반도체로 취급합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선단 반도체가 양산되기 시작한 건 불과 10년이 채 안 된 일입니다. 선단 반도체를 위탁생산할 수 있는 파운드리 업체도 TSMC, 삼성 파운드리,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 등 다섯 손가락 안에 꼽지요. 여전히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반도체의 절대다수는 레거시 반도체입니다.


사실상 모든 공산품에 쓰이는 진짜 '산업의 쌀'
레거시 반도체는 가전제품, 인프라 등 우리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공산품에 탑재된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레거시 반도체는 가전제품, 인프라 등 우리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공산품에 탑재된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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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레거시 반도체는 구체적으로 어디에 쓰일까요. 사실상 우리의 일상을 이루는 모든 공산품에 탑재된다고 보면 됩니다. 산업용 로봇, 자동차, 가전제품, 전력 계통 설비, 심지어 지하철의 신호 수신용 아날로그 반도체도 레거시 반도체의 일종입니다.

특히 레거시 공정은 방위산업용 반도체의 주류이기도 합니다. 보통 미사일, 로켓, 군용 무전기 등에 쓰이는 파워 반도체나 통신 반도체가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이렇다 보니 레거시 반도체가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선단 반도체보다 훨씬 큽니다. 선단 반도체 공급이 끊기면 고급 스마트폰이나 슈퍼컴퓨터, 고사양 게이밍 PC 수급에 어려움을 겪겠지요. 하지만 레거시 반도체 수급난은 거의 모든 제조업과 각국 군대, 공공기반시설에 영향을 줄 겁니다.


앞서 2021년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줬던 반도체 수급난도 선단 반도체가 아닌 레거시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벌어진 일입니다. 당시 특히 부족했던 건 20~28㎚ 노드의 반도체였습니다. 주로 차량용 고성능 마이크로컨트롤러(MC) 제품에 쓰이는 반도체입니다.


중국·대만이 세계 시장 70% 넘게 장악
중국산 '구식 반도체' 쓰나미가 두려운 이유 [테크토크] 원본보기 아이콘

미 정부를 특히 우려케 하는 건 오늘날 레거시 반도체 생산 대부분이 중국, 대만에 몰려 있다는 산업 구조일 겁니다. 특히 중국은 레거시 반도체 분야에서 최근 상당한 진전을 보였습니다. SMIC라는 중국 회사는 28㎚ 노드 회로를 그릴 수 있는 DUV 노광장비를 자체 개발했고, 이제 중국은 해외 업체의 설비 수입 없이도 직접 레거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오는 2027년 글로벌 레거시 반도체의 42%가 대만, 33%가 중국에서 만들어질 거라고 전망합니다. 미국은 5%, 한국은 4%에 불과합니다.


물론, 레거시 반도체의 '원천 기술' 상당수는 여전히 미국, 영국 등 서구 회사들이 거머쥐고 있습니다. 하지만 레거시 반도체는 이미 기술적으로 성숙한 부품입니다. 즉 기술 우위보다는 가격 경쟁력 우위가 시장에 더 큰 파급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전기차, 배터리, 철강 등에서 이미 이뤄진 '중국산 저가공세'가 레거시 반도체에서도 재현된다면, 28㎚ 이상급 반도체 대다수가 중국산으로 점철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겁니다.


중국산 저가 공세, 반도체서 재현될까
레거시 반도체 공급에 의존하는 산업 중 하나인 로보틱스.

레거시 반도체 공급에 의존하는 산업 중 하나인 로보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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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다시피 레거시 반도체 기술의 우위는 여전히 서구 기업들에 있습니다. 아날로그 반도체의 강자인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산업용 MC 설계 기술의 표준 격인 영국 ARM 자동차 반도체 강자 독일 인피니온·네덜란드 NXP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어쩌다 서구 업체들은 반도체 생산의 우위를 중국에 허락하게 됐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첨단 반도체 자립'을 추구하는 각국의 노력이 오히려 레거시 반도체 불균형을 불러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의 '칩스 법(CHIPS act)' 보조금 중 상당 금액은 5㎚급 이하 최첨단 선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TSMC 애리조나 파운드리에 투자되고 있는 실정이지요.


실제로 지난 3월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국제 안보 싱크탱크 '국제전략연구소(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는 레거시 반도체 수급 불균형 현상에 대해 경고한 바 있습니다. 당시 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레거시 칩 부족 사태의 주요 원인은 단순히 투자 부족 때문"이라며 "현재 전체 반도체 투자액의 6분의 1만이 레거시 반도체에 투자되고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서구 기업들이 레거시 반도체 투자에 소극적인 이유는 간단합니다. 레거시 반도체는 선단 반도체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즉, 마진율이 더 낮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정부로부터 보조금 지원을 받는 중국산 저가 제품과 가격 경쟁을 펼칠 여력이 있는 업체도 별로 없습니다.


결국 레거시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 대만 등 일부 국가에 대한 의존을 피하려면, 국내 레거시 반도체 제조업체의 투자 유인을 높이면서 가격 경쟁력도 강화할 전략이 필요합니다. 미국을 포함한 각국 정부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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