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장군 홍범도' 저자 "구국 영웅을 이렇게 난도질 하나"
이동순 시인 MBC라디오 인터뷰
"장군의 평생소원이 조국의 주권을 찾는 일"
육군사관학교 교정 안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을 두고 논란이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민족의 장군 홍범도' 저자인 이동순 시인이 "카자흐스탄에서 고독하게 살다가 아주 정말 어렵게 어렵게 귀국하신 어른을 모욕을 주고 땅에 팽개치고 손상을 준다면 이것은 우리 후손들로서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며 개탄했다.
홍 장군 관련 연구를 42년 동안 이어온 이 시인은 30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손을 댈 게 따로 있지 어떻게 온몸을 바쳐 구국 활동에 바친 홍범도 장군을 왜 이렇게 난도질하고 매도를 해 대는가"라며 이같이 말했다.
광복절 연휴 마지막날인 16일 정부서울청사 외벽에 홍범도 장군 추모 현수막이 걸려 있다. 국가보훈처는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을 국민과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장군의 귀환이라는 표어로 현수막을 게시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앞서 국방부는 28일 오후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관련 입장' 자료를 배포해 홍 장군의 소련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자유시 참변 연관 의혹 등을 언급하며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하여 기념하는 것은 육사의 정체성을 고려시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 시인은 홍 장군의 소련공산당 가입 이력과 관련해 "홍범도 장군의 평생소원이 고려독립 대한독립운동이고 빼앗긴 조국의 주권을 찾는 일"이라며 "공산당에 가입한 것도 그 당시에 소련의 무력을 활용해서 이용해서 일제 침략에 맞서 싸우겠다는 그런 복안을 갖고 계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빨치산이라는 말은 그 당시 1920년대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에 소속되어서 싸우던 모든 유격대를 빨치산이라고 했고, 홍범도 장군을 빨치산이라고 불렀던 것은 조선독립군 제국주의의 어떤 고통을 받는 민중을 구출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항일유격대 이런 뜻으로 쓴 것"이라며 "지리산 빨치산과 동급으로 해석하는 것은 정말 금물"이라고 했다.
홍 장군이 자유시참변과 연관돼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홍 장군은 당시) 현장에 계시지 않았다"며 "그래서 그 소식을 듣고 황급히 와보니까 길가에 시신이 널브러져 있고 어마어마한 동족상쟁이 타국에서 펼쳐졌고 통곡하면서 뒷수습을 시신을 땅에 묻고 황급히 뛰어다니면서 현장을 정리하고 나중에 재판관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시 참변으로) 한 640명 전사하고 600명 가량이 생포가 되었다"며 "(홍 장군은) 생포된 감옥에 갇힌 독립군들을 죄의 경중을 가리는 재판관으로 스스로 자청해서 참석을 하셨는데 그 이유는 어떻게든지 석방시키려는 그러한 혼신의 노력을 당신이 하시겠다고 하셨고, 최종적으로 한 30명이 감옥에 갇히고 나머지는 다 석방이 됐다"고 했다.
'홍 장군이 소련 정부에게 연금을 받기 위해 작성한 이력서에 자유시 참변 관련 내용을 직접 기술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 서류를 저도 봤지만 그 어디에도 그런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다"며 "홍범도 장군은 고려독립 의병대 38년 28년 이런 식의 짧은 문장은 작성하실 수 있어도 무슨 내용을 길게 무엇을 쓰고 하는 그런 문장 구사 능력이 없으셨다.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 시인은 "(홍 장군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며 "공산당에 입당을 했지만 홍범도 장군은 포수 출신이었고 막스레닌 주의의 책을 읽으신 것도 아니고 무슨 박헌영이라든지 이동휘 같은 모스크바에 유학을 하고 돌아온 공산주의자와는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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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홍 장군은) 러시아에 살았었고 그냥 거기 있으면서 분위기에 따른 그러한 생활들, 예를 들면 연금을 받기 위해서 입당원서를 내야 된다라든지 기타 여러 가지로 해서 거기 살면서 받아들인 그런 형식일 뿐"이라며 "홍범도 장군이 무슨 공산주의자로 활동을 한 기록이 어디에 있는지 한번 내놓아 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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