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청와대는 늘 관람객으로 북적인다. 주변에는 각 지역에서 올라온 버스들로 혼잡하다. 역대 대통령들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역사의 주 무대였다는 점이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끈다. 호기심과 기대다. 눈에 보이는 청와대 공간이나 건물, 수목에는 숱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하나하나가 역사이자, 상상력의 원천이고 콘텐츠 소재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청와대에는 이야기를 넘어서는 보이지 않는 스토리가 있다. 최고통치자를 둘러싼 권력 쟁투, 영광스러웠으나 고독했던 그들의 삶, 외국 정상들과 있었던 수많은 에피소드…. 권력의 최고 핵심 공간에서 펼쳐졌던 사람과 사건을 둘러싼 막후 이야기는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 속에 있다.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함께 국민에게 청와대가 개방된 지 1년 여가 지났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함께 국민에게 청와대가 개방된 지 1년 여가 지났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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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이야기라도 파편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하나 구슬을 꿰어 목걸이를 만드는 작업은 새로운 역사 탐구 과정이다. 맥락적이고 종합적으로 청와대를 탐험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통사적 이해와 닿아 있다. 부분만 보면 전체를 놓치기 쉽고, 단면만 보면 맥락을 잃을 수 있다.


고려의 궁궐터였던 청와대는 단순하게 '경복궁의 후원'은 아니었다. 명실상부하게 조선의 법궁 경복궁의 '후원'으로 존재한 시간은 30여 년 정도로 그리 길지 않았다. 그곳은 신하들이 충성을 맹세하는 회맹단이 있던 곳이고, 오랫동안 버려진 공간이었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운동회와 궁술대회가 수시로 열렸던 터였다. 1939년 조선 총독의 관저가 청와대 터에 세워지기 전까지 그랬다. 그 이후에야 청와대는 권력의 핵심 공간으로 등장했다.

청와대가 한때 시위 장소였다면 믿어질까. 1925년 보성고등보통학교 3학년생 100여명은 동맹휴학을 결의하고 경무대에서 시위를 벌였다. 1929년에는 광주학생의거를 지지하는 시위대가 경무대에 집결하기도 했다.


청와대에 있는 744살 먹은 주목은 이 모든 것을 지켜봤을 것이다. 고려 충렬왕 때부터 자리를 지킨 이 주목은 말이 아닌 존재 자체로 우리에게 청와대의 역사를 말해준다.


백악산(북악산)도 권역에 포함된다고 보면 청와대는 한국 마라톤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생은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에 "이른 새벽마다 더운 김을 뿜어내며 가까운 삼청동 골짜기를 타고 북악산정까지 뛰어올랐다"라는 글을 남겼다. 1947년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 서윤복 선생도 "정릉 골짜기에서 삼청공원으로, 북악산 꼭대기로 뛰어오르며~"라고 증언했다. 1950년 보스턴마라톤대회 우승자인 함기용 선생도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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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에서 서울시민 50여 명을 대상으로 '청와대, 역사 스토리텔링' 강의를 세 차례 진행했다. 지난해 유튜브에 올린 '10분으로 요약한 청와대 천년 역사' 영상이 계기가 됐다. 이제 마지막 현장 답사만 남았다. 공부하면 할수록 새로운 스토리들이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청와대는 겉핥기에 지나지 않았다. '보이는 것'과 관련한 스토리만 해도 그랬다. '보이지 않는 스토리'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지금부터가 발굴의 시작이다. 우리는 청와대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소종섭 트렌드&위켄드 매니징에디터 kumk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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