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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비트]'칸막이에 불규칙 배열도'…재택근무시대 '사무실'의 미래는[오피스시프트]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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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부터 생겨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확산
현대 사무실 역사에서 대성공 거둔 큐비클

편집자주[찐비트]는 '정현진의 비즈니스트렌드'이자 '진짜 비즈니스트렌드'의 줄임말로, 일(Work)의 변화 트렌드를 보여주는 코너입니다. 찐비트 속 코너인 '오피스시프트(Office Shift)'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시작된 사무실의 변화를 꼼꼼히 살펴보고 그동안 우리가 함께해온 실험을 통해 업무 형태의 답을 모색하기 위한 바탕을 마련하는 콘텐츠가 될 것입니다. 매주 토·일요일 오전 여러분 곁으로 찾아갑니다. 40회 연재 후에는 책으로도 읽어보실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찐비트]'칸막이에 불규칙 배열도'…재택근무시대 '사무실'의 미래는[오피스시프트]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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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도시 같다."


대표적인 빅테크 기업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직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경험한 직원들이 사무실로 출근하는 경우가 크게 줄면서 널찍한 책상이 곳곳에 비어있는 상황을 표현한 말이었다. 피차이 CEO는 "현재 공간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자원을 잘 관리해야 한다"면서 주 4일 이상 사무실로 나오는 인력은 전체의 3분의 1 수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유령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글이 내놓은 대책은 무엇이었을까.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최고경영자(CEO)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최고경영자(CEO)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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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C방송 등에 따르면 구글은 지난달부터 '하이브리드 근무(사무실 출근과 재택근무의 결합)'하는 직원들이 서로 출근하지 않는 날에 엇갈려 같은 책상을 사용하는 정책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일부 직원의 주 3일 사무실 출근 방침을 주 2일로 바꾸고, 2명을 한 조로 배정해 같은 책상을 사용하라는 지시였다. 월·수요일에 사무실로 나오는 직원은 화·목요일 출근자와 같은 책상을 쓰는 식이다. 회사 전체 직원의 25%에 해당하는 직원들이 실험 대상이 됐다.


코로나19가 사무실의 모습을 바꿔놓았다. 재택근무와 하이브리드 근무라는 새로운 근무 환경과 경기 둔화라는 상황이 사무실 변화에 녹아들었다.


사무실은 한마디로 사무 업무를 위한 전용 공간이다. 생산성 향상이라는 목표 아래 시대와 가치에 따라 모습이 변한다. 사무실은 적게는 여러 명, 많게는 수만 명까지 모여 일정 시간을 함께하는 공간인 만큼 다양한 주체의 요구가 한자리에 모여 변화를 만들어낸다. 특히 사무실을 마련한 회사와 이를 이용하는 직원의 소통과 가치 충돌이 사무실에 오롯이 담긴다.

◆ 사무 전용 공간은 언제 처음 등장했나

사무실은 언제 처음 등장했을까. 먼저 사무실의 영어단어 '오피스(Office)'는 '일(work)'을 뜻하는 라틴어 '오푸스(opus)'와 '하다(do)'라는 의미의 라틴어 '파세레(facere)'가 합쳐진 라틴어 '오피시움(officium)'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피시움은 현재 사용되는 사무직을 위한 전용 공간이라기보다는 고대에 사제들이 의식을 행하는 것을 포함해 폭넓은 의미에서 일하는 공간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사무실처럼 사무를 위한 전용 공간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 다. 미 경제 전문 매체 패스트컴퍼니에 따르면 비톨드 리브진스키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는 1987년 내놓은 책 '집 : 아이디어의 짧은 역사'에서 과거 재택근무를 했던 변호사, 공무원을 비롯한 전문직 종사자들이 런던이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프랑스 파리 등에서 사무실 근무를 시작했다고 했다.

영국 구 왕립해군 본부 건물(사진출처=영국 정부 홈페이지)

영국 구 왕립해군 본부 건물(사진출처=영국 정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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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등장한 영국 최초 사무 전용 건물이 바로 1726년 대영제국의 수도 런던에 있는 구 왕립해군 본부 건물이다. 당시 이 사무실은 왕립해군의 서류 작업을 처리하는 공간이자 회의 공간으로 활용됐다. 뒤이어 1729년에는 영국 동인도회사가 당시 식민지였던 인도와 관련한 업무를 보는 본부를 런던에 세웠다. 처리해야 할 서류량이 많아지면서 이를 처리해야 할 중앙집중식 공간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부편집장이었던 루시 켈러웨이가 2013년 BBC방송에서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당시 동인도회사 직원이었던 17살의 찰스 램은 "금요일 아침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사무실에 있었다. 어제는 밤 9시까지 일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인도에서 서류가 넘어오면 일이 한꺼번에 몰려 야근이 불가피했다는 것이 켈러웨이의 설명이다. 18세기에도 현대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직장인들은 야근에 고통받고 있었다.

1796년 영국 동인도회사 런던 본부의 모습(사진출처=대영도서관 홈페이지)

1796년 영국 동인도회사 런던 본부의 모습(사진출처=대영도서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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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에는 영국 정부의 공식 문건에도 사무실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알렉시 마모트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교수는 2015년 영국 정부 공식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이 일화를 소개했다. 1840년부터 1859년까지 영국의 사무차관을 지냈던 찰스 트리벨리언 경이 1854년에 남긴 한 기록에는 "사무 업무를 위한 분리된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머리로 일하는 사람(a person who works with his head)'이 방해를 받지 않는다"면서 "다만 적정한 관리하에 여러 직원이 한 공간에서 협력해 일하는 것이 적절한 방식"이라고 적혀있었다.

◆ 생산성 극강 '테일러리즘' vs 자율성 살린 '뷰로란트샤프트'

현대 사무실이 본격적으로 확산한 건 19세기 산업혁명 이후다. 금융, 인프라 등 각종 산업이 빠르게 발전, 성장하면서 관련 서류 작업을 할 일이 급증했다. 사무원이 대폭 늘었고 회사는 조직 관리 차원에서 이들을 한곳에 모아둘 필요성이 커졌다. 현대 사무실의 등장과 함께 초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개념이 바로 '테일러리즘(Taylorism)'과 '뷰로란트샤프트(Burolandschaft)'다.


테일러리즘은 1910년대 미국의 기계 엔지니어이자 경영학자였던 프레데릭 테일러가 만든 과학적 관리 기법으로,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직원과 공간의 효율성을 끌어올리고 비용은 줄여 이익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테일러는 자신의 저서 '과학적 관리법'을 통해 근로자의 동선이나 작업 범위 등을 표준화해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동시에 관리자가 모두를 지켜볼 수 있는 개방형 사무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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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리즘의 가치를 담은 사무실의 모습은 마치 바둑판 같다. 당시 사무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칸막이 하나 없이 개방된 넓은 공간에 책상이 일렬로 빼곡히 들어서 있고, 빈틈을 최소화해 가능한 한 많은 책상이 배치돼 있다. 테일러는 책에 "과거에는 사람이 먼저였다. 미래에는 시스템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고 적었다. 효율성과 생산성에만 집중한 사무실은 비인간적인 작업 환경이라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무실의 환경은 1950년대에 크게 변한다. 대공황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에서 먼저 시작된 변화였다. 1958년 독일의 에버하드·볼프강 슈넬레 형제가 사무실 풍경이라는 뜻의 독일어 뷰로란트샤프트라는 개념을 내놨다.


2014년 책 '큐브 : 일터의 비밀스러운 역사'를 쓰고 현재는 미국 민주당 소속 펜실베이니아주 상원의원인 니킬 사발이 2015년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으로 설명한 내용을 보면 당시 슈넬레 형제는 테일러리즘 스타일의 사무실이 '케케묵은 구식에 쓸모없는 형태'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들이 생각한 사무실은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고, 유기적이며 모든 것이 맞물려 돌아가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1975년 뷰로란트슈타트 스타일의 한 영국 사무실(사진출처=런던대 브리티시히스토리 홈페이지)

1975년 뷰로란트슈타트 스타일의 한 영국 사무실(사진출처=런던대 브리티시히스토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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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리즘을 기반으로 한 사무실이 직선 형태로 구성됐다면 뷰로란트샤프트 개념을 탑재한 사무실은 곡선 형태를 띤다. 두 형태 모두 개방형 사무실이라는 점은 같았지만, 테일러리즘 사무실과는 달리 뷰로란트샤프트 사무실은 불규칙하게 공간을 구성하고 각 책상 사이에는 식물을 배치해 공간을 분리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유연성과 자율성을 높였다.

◆ 대성공 거뒀지만 정작 발명가에 버림받은 '큐비클'

1960년대 들어 등장한 큐비클은 현대 사무실의 역사에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동시에 엄청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사무실 형태다. 큐비클은 1~2m 높이의 칸막이 3개로 사무직 직원의 양옆과 앞을 막아 동료와 업무 공간을 분리해 하나의 작은 업무 공간을 만드는 일종의 가구다. 직원 한 사람이 작고 네모난 공간에 들어가 있는 형태로, 국내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큐비클은 1960년대에 개방형 사무실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했다. 미국 사무용 가구 회사였던 허먼 밀러의 컨설턴트인 로버트 프롭스트가 만든 일종의 가구 '액션 오피스'가 바로 큐비클로 연결됐다. 당시 프롭스트는 개방형 공간이 직원 간의 소통을 오히려 줄인다고 보고, 때로는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면서 동시에 협업도 가능하도록 가구로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직원 개인의 자율성도 확보하고 다양한 업무 환경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도 제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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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롭스트가 만든 액션 오피스에 가성비를 더한 '액션 오피스2'인 큐비클은 출시 직후 대성공을 거뒀다. 사발이 WSJ에 소개한 바에 따르면 큐비클은 1985년 세계 디자인 콘퍼런스에서 25년 내 가장 성공한 디자인으로 평가됐다. 또 1998년 4000만명의 미국 직장인이 42개 버전의 액션 오피스2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프롭스트가 '큐비클의 아버지'라는 명칭까지 받게 된 이유였다.


하지만 프롭스트는 정작 2000년 본인이 사망하는 그 순간까지 큐비클이 활용되는 모습을 보며 한탄했다고 한다. 프롭스트의 의도와 달리 기업들은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사무직원 채용이 급증하자 사무실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큐비클을 비용 절감 수단으로 썼다. 테일러리즘 사무실처럼 큐비클이 연달아 일렬로 배치된 일명 '큐비클 농장(cubicle farm)'에서 직원들은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미 유력 매체 포천은 2006년 큐비클을 두고 '대실수(The Great Mistake)'라고 표현하며 비판했다.


WSJ에 따르면 프롭스트는 자신이 죽기 2년 전인 1998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이것(큐비클)의 어두운 부분은 모든 조직이 똑똑하고 진보적이지는 않다는 데 있다. 많은 경우 같은 도구를 가져다가 아주 기분 나쁜 것을 만들어낼 무지한 인물들이 이용한다는 것"이라면서 "그들은 아주 좁은 방을 만들고 거기에 사람들을 쑤셔 넣었다"고 슬퍼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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