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개편 놓고 기업·회계업계 갈등
규제 완화에 회계감사 느슨해질까 걱정
[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회계에는 인간의 욕망이 작용합니다. 감추고 싶지만, 들춰내야 하죠. 갈등의 대상이 되지만, 그럴수록 회계는 정직해야 합니다."
한 회계법인 대표는 회계의 속성과 숙명을 이같이 전했다. 그의 설명은 욕망·갈등·정직 3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돈의 흐름은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흐르는지 나타낸다. 이걸 분석하는 게 회계다. 회계사는 이 과정에서 조작·은폐된 게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 이와 달리 기업은 입맛에 맞는 회계법인을 고르려고 한다. 문제는 기업이 회계법인을 고르는 '회계쇼핑' 과정에서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란 점이다.
2001년 에너지기업 엔론의 분식회계 사태를 계기로 미국은 이듬해 7월 회계개혁 법안인 '사베인스-옥슬리법'을 통과시켰다. 감사인의 독립성과 분식회계 관련자 처벌 강도 등을 높여 회계 투명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서는 이보다 더 강력한 '한국판 사베인스-옥슬리법'을 도입했다. 바로 신(新)외부감사법이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가 계기가 됐다. 2019년부터 상장기업 등이 6년 연속 자율적으로 감사인을 선임하면 다음 3년은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시행됐다.
이를 둘러싸고 기업과 회계업계가 갈등을 빚고 있다. 금융당국이 감사 보수 증가 등 기업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보고 규제 완화 작업에 나서면서다. 사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다. 기업들은 감사 보수가 해마다 늘었고, 지정감사인의 폭리와 권한 남용도 증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회계업계의 배만 불리고, 자유수임제가 근간인 글로벌 추세에도 역행한다고 말한다. 이와 달리 회계업계는 감사인의 독립성이 개선되고, 회계 투명성도 나아지고 있다고 반박한다.
현재로서는 누구 말이 더 맞는지 평가하기 쉽지 않다. 제도의 근간인 '6+3'의 효과를 확인하려면 적어도 9년이 지나야 하는데, 아직 한 번의 주기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 개선 목소리가 나와서다.
다만 논란과 갈등을 떠나 '회계의 중요성'을 간과해선 곤란하다. 지난해 오스템임플란트·우리은행 등의 횡령으로 회계업계가 얼룩졌다. 자본시장의 속성상 회계 부정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무리 엄격함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게 회계감사다. 정부의 규제 완화 방침에 맞물려 기업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이유로 회계제도가 느슨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자산 1000억원 미만 상장회사는 내부회계관리제도 외부감사 의무가 면제된다. 대형 비상장사의 범위도 기존 10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상향된다.
한국회계학회는 지난 10일 금융위원회로부터 발주받은 연구용역 결과를 공개했다. '6+3' 형태의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9년간 자유롭게 선임한 후 3년간 지정 감사를 받는 '9+3' 방식과 '6+2' 방식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회계업계는 '6+2' 방식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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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제 회계신인도는 주요 64개국 중 꼴찌 수준인 61위에서 2021년 37위로 올랐다가 지난해에 다시 53위로 추락했다. 규제 완화 차원에서 기업에 자율성을 주고 감사인의 독립성도 유지하려면 기업과 회계업계 모두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회계 부정은 자본시장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회계 부실의 후폭풍은 기업과 투자자, 나아가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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