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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2도]문동은도 원수를 사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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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피해 소재 넷플릭스 '더 글로리'
종교도 법도 '복수 포기' 종용
문명사회 또 다른 폭력일 수도…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까지 마저 돌려대고, 또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누가 억지로 5리를 가자고 하거든 10리를 같이 가주어라."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목사인 이사라 아버지(이병준)가 늘어놓는 설교다. 예수가 산상수훈에서 제자들과 군중에게 내린 권고로, 마태복음 5장에 수록됐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촉구한다.


[영상2도]문동은도 원수를 사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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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서는 누가복음 등에서도 복수를 포기하라고 여러 차례 종용한다. 타인에게 당한 고통과 상실을 하느님의 심판에 맡기라고 가르친다. 예수는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몸소 실천하기도 한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천주교도 고의적 앙갚음을 죄로 규정한다. 벌을 피하려면 고해나 고행 같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불교도 다르지 않다. 원한과 복수욕을 개인의 책임으로 규정한다. 보복 행위는 적은 남이 아니라 내 속에 있다는 부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이다.

학교폭력 피해자 문동은(송혜교)에게는 하나같이 우이독경이다. 복수에 인생 전체를 걸었다. 궁극적 목적은 돈이나 명예 회복이 아니다. 오로지 상대의 고통만 원한다. 이미 죽음 이상을 각오했다. "종교가 없으면 좋은 점이 뭔 줄 알아? 갈 곳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거야. 지옥."


증오의 원천은 박연진(임지연), 전재준(박성훈) 등 가해자들. 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키운 건 불신과 배반의 사회다. 가정은 물론 학교, 경찰서 등에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다. 학대 사실을 알고도 침묵을 강요한다. 문제 삼으면 가혹하게 반격한다. 마지막 보루인 사법 체계마저 입맛대로 작동해 고립과 무력감을 가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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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법은 약자의 자존감과 삶의 질을 옭아매곤 했다. 복수를 두고 기독교 교리와 정면으로 대치하는 함무라비 법전조차 보호망이 되지 못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만인에게 공평해 보이지만 섞일 수 없는 사회 계급이 존재했다. 상위 계급 바빌로니아인은 같은 계급 시민의 눈을 상하게 하면 자기 눈을 내놓아야 했다. 반면 평민의 눈을 멀게 한 경우에는 벌금만 요구받았다.

사법 정의의 균형이 응보주의에서 교화와 갱생, 회복으로 옮겨진 뒤에도 부당한 처사는 줄지 않았다. 분노를 유발하는 상황들은 이를 일으킨 대상에게 전가돼 복수하고 싶은 충동으로 이어진다. 세상의 많은 원한이나 증오 범죄가 대부분 이런 감정에서 비롯된다. 비극적 결말을 생각하면 다스려야 마땅하나 조절하기는 쉽지 않다.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스티븐 파인먼 영국 배스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저서 '복수의 심리학'에서 복수를 "인간의 끈질기고 강력한 욕구"라고 정의했다. "우리의 생물·사회적 기질에 붙박이로 섞여서 전수되고 슬픔, 비탄, 굴욕감, 분노 같은 격한 감정으로 촉발되는 원초적 본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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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화의 얼굴 아래서 우리는 참도록 강요받는다. 사회가 대신 복수해준다고 교육받는다. 하지만 당한 사람에게 한없이 부족할 수 있고, 설령 충분하다 한들 이미 받은 상처가 다 아물지 않는다. 문동은이나 주여정(이도현)처럼 언제든 본능적 욕구를 다시 드러낼 수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설교나 고통을 감당하라는 종용은 이를 촉발하는 또 다른 폭력일 수 있다. 오히려 가해자들에게 용서를 빌라고 권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복수의 비극이 꼬리를 물지 않으면서 조금이나마 상처를 아물게 할 테니.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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