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젊음의 열정이 분출되는 공간에 있었을 뿐이다. 함께하고 싶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가지 못한 이도 많다. 그날의 참사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이 부끄러운 사회가 그들을 삼켜버렸다. 너무 많은 청춘이 꽃을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한 채 작별을 고했다. 누군가의 귀한 딸이자 귀한 아들을 너무도 허망하게 떠나보낸 우리는 죄인이다. 수도 서울의 한복판을 지옥보다 더 참혹한 공간으로 만들었던, 방치했던 죄인이다.

이태원 참사는 대한민국 민낯을 드러냈다. 우리가 망각의 늪에 빠져 있었음을 깨닫게 했다. 일상의 위험은 우리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삶을 옥죄고 있는데도 이를 감지하지 못했다.


7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희생자 추모 메시지가 빼곡히 붙어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7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희생자 추모 메시지가 빼곡히 붙어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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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는 미몽(迷夢)에 젖어 있었다. 이태원 참사를 바라보는 외국 언론의 싸늘한 시선 앞에서 우리는 어떤 반박도 할 수 없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2014년 봄, 세월호 아이들을 그렇게 떠나보낸 뒤 우리는 어떤 다짐을 했던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 않았던가.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때의 다짐을 반복하고 있다.


무미건조한 변명들이 하늘로 떠나간 이들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을까. 정말로 미안함을 느낀다면 이 참혹한 현실을 낮은 자세로 돌아봐야 한다. ‘비겁한 어른’들의 언행을 기억하고 기록해야만 한다. 국가 시스템을 바로잡으려면, 또 다른 불행을 예방하려면 그 노력을 다해야 한다.


10월29일 그날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태원 참사 이후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세월호와 닮았다. 자기 책임을 떠넘기려 애쓰는 공직자들의 비겁한 변명. 대중의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희생양 찾기에 골몰하는 태도.


근조 리본을 거꾸로 달도록 지시하거나 희생자 대신 사망자라는 표현을 강요하는 정부의 모습은 짠하다 못해 기괴하다. 어떻게 해서든 정치적 불똥이 튀는 것을 막아보려는 안간힘이다. 정말 그런 행동으로 대중의 상심과 분노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공적인 마인드가 결여된 이들이 중책을 꿰차고 앉아 권력에 취해 있는 게 문제다. 행정안전부 장관, 용산구청장, 경찰청장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이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경찰 실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다 내부 반발을 사는 모습은 보기에도 민망하다.


공직의 무게감을 견딜 자세가 안 된 이들은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


이태원 참사는 평소에도 많은 사람이 찾는 서울의 골목길에서 일어난 일이다. 출퇴근길 지하철에 사람이 몰려드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불안감을 과한 공포라고 단언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국민 애도기간은 끝났지만 슬픔의 물결이 이어지는 것도 그 때문일까.


애도기간이 끝난 이후 어떤 모습이 전개될지 궁금하다. 아프고 쓰리고 힘겹더라도 안전의 균열을 하나하나 찾아내 바로잡으려 할까. 아니면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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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진 뒤에야 깨닫는 이 부끄러운 사회를 대물림하지 않으려면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우리는 모두 답을 알고 있다.


[시시비비] 꽃이 진 뒤에야 깨닫는 사회 원본보기 아이콘

류정민 문화스포츠부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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