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유닛(GPU)이 미국의 대중(對中) 수출 제한 품목에 포함됐다. / 사진=송현도 아시아경제 인턴기자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유닛(GPU)이 미국의 대중(對中) 수출 제한 품목에 포함됐다. / 사진=송현도 아시아경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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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송현도 인턴기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 설계사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용 그래픽처리유닛(GPU)에 대해 대중(對中) 수출 제한 명령을 내렸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의 선진 기술이 중국 군사 프로젝트에 쓰일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GPU를 전략물자로 인정한 셈이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고사양 게임을 구동하기 위한 비싼 컴퓨터 칩 수준으로 인식됐던 GPU가 이제는 미·중 패권 분쟁의 중심축으로 떠오른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 中 AI 연구 능력 정조준

엔비디아는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를 통해 미 행정부로부터 고성능 GPU의 중국·홍콩 수출 제한 명령을 받았다고 밝혔다. 수출이 금지된 구체적인 품목은 AI·데이터센터 전용 GPU인 A100(2020년 출시)·H100(올해 출시)이다. 앞으로 엔비디아는 A100, H100을 중국 고객에게 판매하기 전 미 상무부에 라이센스를 요청해야 하며 발급이 거부되면 판매할 수 없다.


엔비디아는 이번 조처로 약 4억 달러(약 5458억 원)에 달하는 매출 피해를 볼 것으로 전망했다. 수출 금지령 소식이 알려진 시점부터 5일간 엔비디아의 주가는 14.77% 하락했다. 당장 고성능 GPU의 공급이 끊긴 중국 기술 산업계도 여러 AI 프로젝트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자국의 과학기술 우위를 이용해 개발도상국을 탄압하려 한다"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엔비디아의 A100 GPU 기반 AI 컴퓨팅 시스템 'DGX 포드' / 사진=엔비디아 홈페이지 캡처

엔비디아의 A100 GPU 기반 AI 컴퓨팅 시스템 'DGX 포드' / 사진=엔비디아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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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AI 굴기'를 막을 방책으로 GPU 수출 제한이라는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우선 미 정부가 구체적인 수출용 라이센스 발급 대상으로 지정한 반도체는 "A100의 피크 성능, 입출력(I/O) 성능과 같은 제원을 보유한 제품"이다. 각각 AI 반도체의 초당 최대 연산 처리 능력, 반도체와 메모리 장치 간의 데이터 흐름과 직결되는 지표다. 또한 A100은 오늘날 전 세계 데이터센터에 탑재되는 고성능 AI GPU의 대표 격이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글로벌 외장 GPU 시장 점유율은 80% 이상에 달하며, 특히 중국 AI 반도체 시장은 95%를 장악하고 있다. 즉 미국은 중국이 고급 AI 연구 환경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반도체만 정밀하게 노려 보급망을 뒤흔드려 하는 것이다.


AI 패권 경쟁 중핵으로 떠오른 엔비디아


양대 열강의 기술 분쟁에 휘말린 엔비디아가 처음부터 AI 산업의 중핵으로 자리한 것은 아니었다. 대만계 미국인 젠슨 황 CEO가 1993년 설립한 엔비디아는 애초 '게이밍 반도체 기업'에서 출발했다. 당시 PC, 콘솔 게임 산업은 전통적인 2D 게임에서 한 차원 진보한 3D 게임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하지만 3D 게임을 안정적으로 구동하려면 복잡한 그래픽 연산을 대신해 줄 GPU가 필요했는데, 이 GPU를 전문적으로 설계해 팔던 회사가 엔비디아였다.


1980-90년대에 3D 그래픽을 갖춘 게임들이 늘어나면서 엔비디아의 GPU 수요도 급격히 높아졌다. /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1980-90년대에 3D 그래픽을 갖춘 게임들이 늘어나면서 엔비디아의 GPU 수요도 급격히 높아졌다. /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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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게임 산업 발전과 궤를 같이하는 엔비디아는 30년에 달하는 기업사에 걸쳐 게임 그래픽 기술을 혁신시켜 왔고, 엔비디아가 만들어낸 '지포스' GPU 브랜드는 게이머들의 필수 컴퓨터 칩으로 자리 잡았다.


'게임용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AI 기업'으로 전환한 계기는 사실 우연에 가깝다. 2016년 '바둑 두는 AI'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구글 알파고는 '딥러닝'이라는 알고리즘으로 구현됐다. 딥러닝은 최대한 많은 양의 단순 연산을 동시에 처리함으로써 무수히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학습하는 방식이다. 즉 컴퓨터 알고리즘의 대세가 '복잡하고 거대한 연산을 하나씩 하는 것'에서 '작고 간단한 연산을 동시에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GPU는 구조상 후자에 매우 이상적인 칩이었다.


CPU(좌)와 GPU의 구조 차이. CPU는 연산 담당 유닛인 ALU의 성능이 높은 대신 숫자가 적고, GPU는 훨씬 간단한 구조의 ALU가 대량으로 배치돼 있다. 이 때문에 GPU는 딥러닝 등 동시 연산이 중요한 알고리즘의 처리에 더 적합한 구조를 갖췄다.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CPU(좌)와 GPU의 구조 차이. CPU는 연산 담당 유닛인 ALU의 성능이 높은 대신 숫자가 적고, GPU는 훨씬 간단한 구조의 ALU가 대량으로 배치돼 있다. 이 때문에 GPU는 딥러닝 등 동시 연산이 중요한 알고리즘의 처리에 더 적합한 구조를 갖췄다.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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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CEO의 기민한 사업 감각도 한몫했다. 엔비디아의 GPU가 AI 산업을 평정할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본 그는 AI용 컴퓨터에 이상적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공격적인 연구개발(R&D) 및 기업 인수합병에 투자, 다른 경쟁 기업들이 따라오지 못할 기술적 성숙을 이뤘다. 또한 엔비디아의 엔지니어들은 전 세계 AI 연구자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해 GPU 구동용 소프트웨어를 최적화했다. 자연스럽게 AI를 개발하는 과학자·엔지니어 등은 '엔비디아 생태계'로 몰려들었고, 현재는 엔비디아가 만들어낸 GPU 개발 환경을 벗어나는 게 불가능해진 상황에 이른 것이다.


"美 수출 제한 '의도치 않은 효과' 낳을 수도"


당장 중국 AI 산업에 막대한 타격이 가는 것은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바이두·화웨이·알리바바 등 중국 기술 기업들은 앞으로 자사 데이터센터에 A100이나 H100을 탑재하지 못하는 상태에 몰릴 수 있다. A100보다 전 세대인 엔비디아 V100을 대체재로 쓸 수 있겠지만, 성능은 후기 제품과 비교해 현저히 떨어진다. 데이터 학습 속도가 생명인 AI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엔비디아가 사라진 중국 AI 시장은 다른 경쟁 기업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우선 엔비디아가 칩 성능에서 정점의 위치를 굳혔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AI 전용 반도체'들이 다수 개발된 상태다. 영국 기업 '그래프코어', 미국 스타트업 '세레브라스' 등이 대표적이며, 이들은 동시 연산에 특화된 컴퓨터 칩 디자인을 개발해 시장 진출 기회를 노리고 있다.


중국의 스타트업 바이렌 사가 공개한 BR100 데이터센터용 GPU / 사진=바이렌

중국의 스타트업 바이렌 사가 공개한 BR100 데이터센터용 GPU / 사진=바이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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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중국 기술업계가 엔비디아에 맞서는 자국산 보급망을 구축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일례로 중국의 GPU 설계 스타트업 '바이렌 테크놀러지'는 지난달 글로벌 반도체 행사 '핫칩스 콘퍼런스'에서 데이터센터용 GPU 'BR100'을 공개하고 엔비디아에 도전장을 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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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전문가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의 AI 반도체 분석 기업 '컴브리안 AI' 창업자인 칼 프로인드는 "엔비디아, AMD 같은 기업들의 AI 칩이 중국에 판매되고 있는 것에 대한 정부의 걱정은 이해할 수 있다"라면서도 "(수출 제한은) '바이렌' 같은 중국 업체나 다른 스타트업들을 도와 미국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송현도 인턴기자 dos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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