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노동의 서비스화…코로나19가 낳은 이색 아르바이트들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송현도 인턴기자] #서울에 거주하는 박모씨(60)는 올해 벌초를 대행업체에 맡길 예정이다. 세 기의 묘를 벌초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24~30만원으로, 형제·자매들이 함께 나누면 1인당 6~8만원 꼴이다. A씨는 "먼 고향에 내려가 벌초하는 수고와 시간을 생각하면 저렴한 비용"이라면서도 "그나마 벌초 때문에라도 명절에 한 번씩 얼굴을 비추던 가족들이 더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경도 있다"라고 말했다.
추석(9월 10일)을 앞두고 이른바 '명절 이색 아르바이트'가 급증하고 있다. 과거에는 가족 구성원이 스스로 해결하던 벌초, 차례상 음식 장만 등을 대행업체에 맡기고 요금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특히 코로나19 유행을 거친 뒤 명절 아르바이트를 이용하는 가구 숫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는 명절 노동의 '서비스화'가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가능성도 내다봤다.
벌초 대행 서비스 등 명절용 단기 일자리는 과거부터 존재했다. 농협은 1994년부터 벌초 대행 서비스를 진행했고, 산림조합 또한 자체적인 전산망을 구축해 벌초를 대신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하지만 명절 아르바이트가 체계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최근 일이다. 특히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서비스 수요자와 제공자 간의 거래가 한층 수월해진 게 도움이 됐다.
일례로 중고거래 및 아르바이트 중개 웹사이트로 유명한 '당근마켓'은 지난 19일 추석 기간 급증할 단기 일자리 수요에 대비해 추석 관련 단기 일자리를 모아 놓은 '추석알바' 서비스를 개시했다. 소비자는 앱에 접속하는 것만으로도 '내 근처'에 있는 다양한 명절 관련 아르바이트를 선택할 수 있다.
명절 아르바이트는 단순히 벌초 등에서 그치지 않는다. 차례상을 대신 만들어주거나 선물 포장 업무가 있는가 하면, 가족이 장기간 집을 비운 사이 반려동물을 대신 돌봐주는 도우미 서비스도 있다. 사실상 명절 기간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던 모든 가사 노동을 용역화하는 단계로 발전한 것이다.
추세에는 코로나19 대유행도 한 몫했다. 2020년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시행됐고 시민의 고향 이동도 제한됐다. 이때 각 지방자치단체는 조상묘 봉분관리, 유지보수, 벌초 등을 대행 서비스에 맡길 것을 적극적으로 권고했다.
농협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면서 벌초 대행 서비스 처리 건수가 급증했다. 2019년 1만 7008건에 불과했으나, 거리두기가 시행된 2020년에는 2만 4422건으로 약 43.6%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2만 7476건으로 전년 대비 12.5% 또 증가했다. 아르바이트 웹사이트나 중개앱을 이용한 민간 서비스까지 포함하면 실제 처리 건수는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처음으로 벌초 대행 서비스를 이용했다는 수도권 거주자 임모씨(58)는 "전문가들이 바로 처리해 주니 명절 보내기가 한층 편해졌다"라며 "수년 전만 해도 이렇게 편한 벌초 방법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는데 코로나가 계기였던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명절의 의의가 바랠 수 있다는 우려도 한다. 60대 심모씨는 "조상님 묘를 손수 관리하거나 상을 차리거나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전통이었는데 우리 대에서 끊길 것 같아 씁쓸한 감도 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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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는 명절 아르바이트가 계속해서 확산하면 설, 추석 등을 받아들이는 시민 태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런 형태의 노동은 특히 MZ 세대가 선호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욱 인기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라며 "전통적 업무가 거래 가능한 서비스로 진화하면 명절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이를 둘러싼 분위기도 판이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현도 인턴기자 dos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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