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여론 양분시키는 이념 논쟁 격화
경제위기 속 무엇이 중요 한지 생각해야

[논단] 탈북 어부 북송 수사, 증오정치의 트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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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가 '탈북 어부 북송 현장' 동영상을 공개했다. 북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호송 요원들에 끌려 강제로 인계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먼저 공개되었던 사진들과 함께, 지켜보는 많은 사람의 분노를 자아낸다. 16명을 죽인‘흉악범’이든아니든, 사지(死地)로 가야 하는 모든 인간의 모습은 슬프고 가련하다.


그런 분노를 대변한 것일까. 통일부가 사진을 공개한 다음 날, 대통령실은 “반인도적·반인륜적 범죄행위”라고 단언하며“자유와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이 사건의 진실을 낱낱이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바로 그날 검찰은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며 수사에 착수했다. 문재인 청와대의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이 '흉악범 추방'의 정당성을 주장하자, 최영범 홍보수석은 취임 후 첫 브리핑을 하고 "정치공세 대신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라"라며 반격에 나섰다. 국민의힘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도“북한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믿은 것"이라며 가세했다. 이 사건에 대한 대응은 정권적 차원에서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이 사건은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 신-구 정권 간의 대결이 되었다.


문제는 이 사안이 어느 한쪽의 손을 선뜻 들어줄 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 ‘반인륜에 대한 분노’라는 코드 하나로만 판단하기에는 복잡하고 논쟁적인 여러 측면이 얽혀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아무리 흉악범이었다 해도 재판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치적 판단만으로 서둘러 북으로 보낸 것은 반인권적 행위였다는 비판을 받을 대목이다. 흉악범의 경우라도 인권 보호의 원칙은 지켜져야 하며, 이는 탈북민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정치적 비판을 넘어 관련자들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단계로까지 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여기에는 헌법과 법률에 대한 해석의 차이, 남북관계에서 고도의 정치적 결정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견의 차이, 외국에서도 여러 사례가 있는 ‘송환 외교’와 ‘인권’ 사이의 딜레마 등 복잡한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러니 격렬한 논쟁이 따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 사건에 대한 수사와 처벌은 국민이 반반으로 갈려 충돌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 시기에 이 문제를 전면에 내건 대통령실의 의도가 ‘자유와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회복시키려는 충정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을 보수층 결집으로 반전시키려는 국면 전환 카드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공방의 종착점이 경제위기 속에서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이념논쟁이 될 수밖에 없음은 내다볼 수 있다. 집권 초기에 국민 여론을 양분시킬 이념 논쟁이 격화되는 상황은 윤석열 정부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에 하나 북한 문제를 고리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가 작용했다면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착각일 뿐이다.


거듭 말하지만, 당시의 성급한 북송 결정은 비판받을 일이었다는 데 동의한다. 다만 문재인 정부 인사들에 대한 수사와 처벌까지 진행되려면, 그들은 의도적으로 사실을 은폐하고 조작하여 탈북 어민들을 억울하게 죽음의 길로 보낸 ‘악행’의 당사자들이 되어야 한다.


지금의 여권 세력이 문재인 정부 시절에 그렇게도 비판했던, ‘악마 만들기 증오 정치’의 방아쇠를 다시 당기는 일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사람들을 악마로 만든다고,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올라갈 일은 만무해 보인다. 그들을 단죄하고 싶으면 국민적 동의가 높을 사안을 갖고 할 일이지, 이렇게 여론이 양분되고 갈등 빚을 사안으로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30% 지지층의 분노만 결집하려다가 자기 진영의 좁은 울타리 안에 영영 갇혀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국민이 묻지 않겠나. 지금 무엇이 중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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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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