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납품단가연동제가 그나마 희망"
원자재가 폭등에 수익 난항
연동제 도입 갈망…확인은 없어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 경기도에서 전기자동차용 배터리팩을 제조하는 S사 정석준(가명·47) 대표는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인내를 감수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납품단가 연동제를 추진하고 있는 게 그나마 희망"이라고 했다.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들 입장에서 요즘 같이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때는 바늘 방석이다.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올라도 대기업들 눈치를 봐가며 가격을 조금 올려받는 선에서 타협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정 대표는 "올해 5~8% 수준의 영업이익을 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런데 우리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고, 그 부분을 제대로 반영해주지 않아 올해는 수익이 굉장히 안좋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고스란히 차값에 반영한다면 지금 전기차 가격의 절반은 배터리팩 가격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면서 "대기업이 그 가격을 반영해주지도 않겠지만, 반영해 주더라도 내년에는 협력사 명단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결국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만큼 납품가격에 반영되지 못할 뿐더러 반영할 수도 없는 현실이라는 말이다.
정 대표는 "대기업이 원자재 가격이 30%가 올랐다고 하면 우리는 40%가 올랐다고 봐야 한다"면서 "10%는 우리같은 협력사들이 감당하고 있는 숫자라고 보면 된다"고 털어놨다. S사는 올해 영업이익 마이너스를 이미 각오했다. 정 대표는 "늘 버텨왔기에 버틸 수는 있는데 길어지면 진짜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서 한숨지었다.
정부도 이런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 12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올 하반기에 '표준약정서'를 마련하고, 납품단가 연동제 시범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보고했다. 또 내년에는 납품대금 조정협의 대행 신청요건을 '납품대금의 3% 이상 인상' 등으로 완화하고, 조정실적이 우수한 위탁기업엔 동반성장지수 가점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성장동력을 좀먹는 고질적 불공정 관행을 정상화하겠다"면서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의 거래에서 원자재 가격상승분이 납품단가에 반영되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실제 도입될지에 대한 확신도 없고, 도입되더라도 내년에나 시행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은 그저 눈치를 보면서 버티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는 의미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이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대기업들의 반대로 도입이 무산된 경험이 있다. 제도 도입마저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기업에 무리한 요구를 하다 찍힐 수 없다는 것이 중소기업인들의 입장이다.
이번에는 여당이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위한 하도급법 개정안을 지난달 당론으로 발의했고, 야당도 비슷한 내용의 상생협력법·하도급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어 그 어느 때보다 법제화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먼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고 나설 필요는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전기이륜차를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솔직히 (납품단가 연동제가) 되면 좋고, 다시 무산되더라도 그러려니 하는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중소기업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만, 이번 원자재 가격 급등 같은 대외적 요인으로 중소기업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납품단가 인상을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도 납품단가 연동제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기지는 않지만, 당연한 요구마저 할 수 없는 관례는 없애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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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대표는 "문제는 지금이 3분긴데 코앞의 4분기마저 전망할 수 없다는데 있다"면서 "정부에 대단한 것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시장의 길잡이 역할은 해줘야 한다. 내년마저 포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한 시장에서 등대 노릇이라도 제대로 해달라는 정부에 대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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