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땀한땀 조선의 장인이 만든 인사동 금속활자, 어떤 책을 만들었나
지난해 6월 발견 동국정운식 표기, 강희안 글씨 바탕 삼은 을해자
불설아미타경 언해본과 유사해, 대불정 수능엄경과도 거의 일치
조선 전기 학문·문화 발전의 동력은 금속활자다. 방대한 양의 도서 간행을 가능하게 했다. 실체는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공평동) 땅속 항아리에서 드러났다. 금속활자 약 1600자가 들어 있었다. 약 600자는 15세기에 한정해 쓰인 일명 동국정운식 표기 한글이었다. 훈민정음 창제 초창기에 중국 한자를 표준음에 가깝게 발음하려고 고안됐다. ‘동국정운(1448)’은 세종이 훈민정음에 반대하는 양반들을 설득하기 위해 본보기로 펴낸 책이다.
실물로 처음 출토된 동국정운식 한글 활자의 상당수는 세조가 즉위한 해 강희안의 글씨를 바탕글자로 삼고 만든 을해자(乙亥字)다. 소·중·대자는 물론 특소자까지 나왔다. 중자 여든아홉 점은 조선 전기 언해본(한문으로 된 내용을 한글로 풀어서 쓴 책) 본문에 보편적으로 쓰인 형태다.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관리학 교수는 최근까지 현전(現傳)하는 서책 가운데 동일한 활자인본을 대조해 확인했다. 활자의 실물과 가장 가까운 글자를 찾고 표시해 활용 사례와 제작 시기를 추정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사동 한글 활자와 관련성이 깊은 책은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 언해본과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능엄경)’ 언해본, ‘대방각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光圓覺修多羅要義經)’ 구결본 세 권이다. ‘불설아미타경’은 석가모니가 기원정사에서 사리불에게 아미타불의 공덕이 장엄함을 이야기한 경이다. 내용은 짧지만 주석서가 수백 종에 이를 정도로 중요하게 취급된다.
해당 언해본은 세조가 번역한 언해본(1464)이 간행되기 전인 1461년에 을해자로 제작됐다고 전해진다. 한글 중·소자가 모두 사용됐다. 전자는 인사동 한글 중자와 매우 유사한 형태다. 옥 교수는 "한 글자씩 대조해 보면 글자 모양이 거의 일치한다"며 "16세기에 간행된 책에서 나타나는 동일한 글자와는 차이가 있다"고 전했다.
능엄경은 송나라 휘종 때 승려 계환이 깨달은 바를 적은 책이다. 불교 전문강원의 사교과 과목 가운데 하나로 채택돼 학습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소화엄경’으로 불리며 여러 차례 간행됐다.
해당 언해본은 세조가 구결(口訣·한문 구절 아래에 달아 쓰던 문법적 요소)을 한글로 달고, 한계희·김수온 등이 번역해 1461년 만들어졌다. 인쇄에는 을해자 활자가 쓰였으며 대·중·소자가 모두 사용됐다. 글자체는 평평하면서 폭이 넓다. 대자에서는 세조, 중자에서는 강희안의 글씨 특징이 두드러진다. 옥 교수는 "을해자가 주조된 지 6년이 채 되지 않아 활자의 마모가 거의 진행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자는 한글 언해문과 한글 구결에 쓰였다. 한 글자씩 대조해 보면 297점이 발견된 인사동 활자와 거의 일치한다.
인사동 활자의 일부는 정난종의 서체를 바탕으로 한 을유자다. 사용된 흔적은 1465년 간행된 대방각원각수다라요의경 구결본에서 나타난다. 대방각원각수다라요의경은 불교 수행의 기본적 틀을 제시하는 경전이다.
한글 구결이 달린 해당 서적은 금속활자로 간행된 원각경이다. 언해가 없고 한글 구결만 대문(본문의 뜻을 알기 쉽게 풀이한 글)과 요해(要解)에 붙어있다. 활자의 크기는 대문과 요해, 요해의 주석이 제각각 다르다. 한글 구결에는 중·소자, 한문에는 대·중·소자가 사용됐는데 이번에 출토된 연각활자까지 더하면 모두 여섯 종이다. 옥 교수는 "인사동 한글 금속활자 가운데 한글 소자(169점), 한글특소자(30점), 한글연각활자(15점)가 간행에 사용됐다고 판단된다"며 "한 글자씩 대조해 보면 글자 모양이 거의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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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뚜렷한 관계성을 확보하려면 과학적 분석과 서체 분석이 필요하다. 그래야 인사동 금속활자의 용도는 물론 발굴장소에 남게 된 원인까지 추정할 수 있다. 옥 교수는 "실물로 등장한 한글 금속활자의 등장은 다소 복잡한 구성으로 각각의 역할이 있는 서적 체계만큼이나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면서 "새롭게 등장할 수 있는 금속활자의 세부적 분류와 금속활자·인쇄기술사 복원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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