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글은 글일 뿐 난 파장을 원하지 않는다”
16년 만에 단편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 출간
"세상의 길은 책이 아닌 사람 사이에 있어"
"내 글에 만족도 '0'...만족할 작품 써 볼 예정"
[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작가는 대개 관종이다. 활자에 주장과 생각을 담아 세상을 향해 기함한다.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읽혀, 긍정받길 바라며, 파장이 넓게 퍼지길 희망한다. 많은 작가가 자신을 ‘관종’이라 칭하는 이유다. 하지만 김훈(74) 작가는 좀 다르다. 글을 쓰지만, 그 파장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걸 꺼려한다. 그는 늘 “나는 여론을 일으키기를 원하지 않는다. (...)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이라며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 단위로 책이 출간될 때마다 “이 책의 출간으로, 나의 적막이 훼손된다면 그것은 전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라고도 한다.
16년 만에 단편 소설집을 냈다. 전작 출간 당시 “여생의 시간을 아껴서 사랑과 희망, 인간과 영성, 내 이웃들의 슬픔과 기쁨, 살아 있는 것들의 표정에 관해서 말하고 싶다”고 했듯. 책에는 “한 사람의 이웃”으로서 쓴 글들이 담겼다. ‘세월이 지나니 견딜 수 있게 된 일들과 갈수록 드러내기 어려워지는 연약한 감정과 흐르는 시간 앞에 겸허해지는 인간 존재’에 천착했다. ‘저만치 혼자서’란 단편집 제목처럼 우두커니 혼자 세상 관망하기를 애정하는 그를 인터뷰로 끌어냈다. 대면까진 어려워 서면 응답을 받았다. 육필을 고집하는 그의 답변이 팩스로 전해졌다.
- 과거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했다. 글이 일으키는 파장에 관한 욕심이 있을 법도 한데,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나.
▲그렇다. ‘파장’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 작가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자기 만족을 이루는 편인가.
▲생활의 구체성을 통과해 나온 글은 좋은 글이다. 자신에게 간절한 것들을 간절하게 드러낸 글은 좋은 글이다. 구문의 틀이 잘 정리된 글은 좋은 글이다. 구문의 틀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글도 좋은 글이다. 수다를 떠는 글은 좋은 글이 아니다. 그러나 수다 안에 긴장이 들어 있으면 수다는 좋은 글이 된다. 간결한 글은 좋은 글이다. 그러나 그 간결함이 사물의 핵심에 닿아 있지 않으면 좋은 글이 아니다. 이런 말을 하자면 한이 없다.
- 지금껏 받은 작품에 관한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나는 인터넷 세상과 절연하고 있으므로 내 작품에 대한 ‘반응’에 매우 어둡다. 한참 지난 후에 입소문으로 그 ‘반응’을 듣게 되는데, 나는 여기에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 본인에게 글을 쓴다는 것, 책을 낸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주로 나의 고통과 부자유, 울분, 소외감 같은 것들을 말하기 위해 글을 썼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세계의 폭력과 인간의 야만성에 반대하는 일이다. 수십억 년을 여기서 살아도 철이 들지 못하는 인류의 허튼 짓거리들을 반성하는 일이다. 언어를 통해서 새로운 삶과 사유와 감각의 영역을 열어내는 일이다. 글을 써서 책을 낸다는 것은 대중 출판을 통해서 나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책이 팔린 만큼의 인세를 받아서 나의 생계를 꾸려나가고, 다음의 글쓰기에 대비할 물적 토대를 확보하는 일이다.
- 일상에서 의미와 재미 중 무엇을 더 추구하나. 작가가 추구하는 의미는 무엇이고, 재미는 무엇인가.
▲오늘(2022년7월6일) 아침 신문을 봤더니,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프린스턴대학교)가 ‘수학은 즐거운 놀이문화’라고 말했다. 이런 언어 구사는 실제로 수학과 더불어 즐겁게 놀아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허 교수의 즐거움은 순수 사유의 힘으로 미지의 세계의 비밀을 해독하는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이런 즐거움에는 ‘의미’와 ‘재미’가 공존한다. 나는 허 교수의 즐거움을 짐작할 수는 있지만 동참할 수는 없다. 나의 작업에서는 ‘의미’와 ‘재미’가 동시에 완성되는 순간은 거의 없다. 허 교수의 ‘즐거움’을 들으니, 글은 음악이나 수학에 비해서 불완전한 표현 수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 글을 쓴다는 건 고통의 곁가지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자신만의 루틴을 지니고 있다. 이를테면 한 문장을 완성하면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던지. 그런 루틴이 있나.
▲나의 루틴은 단순하다. 글이 써지지 않는 날에는 밖에 나가서 논다. 나는 뭐든지 억지로 하지 않는다.
- 에세이처럼 쓴 작품을 모두 버리고, 남은 글을 작품집에 실었다고 했다. 이번 작품의 만족도는 얼마나 되나.
▲만족도는 ‘0’이다. 만족을 느낄 만한 작품을 앞으로 써볼 작정이다.
- 작품 ‘손’에 대한 애정도가 높았던 것 같은데, 작품 표제작은 ‘저만치 혼자서’를 택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저만치 혼자서’는 사실적 내용보다는 이미지가 앞선다. 작품의 주제와 어울리고, 서정적이어서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제목으로 정했다.
- 작품에서 교도소에 갇힌 이춘개는 늘 같은 풍경의 그림만 그렸다. 작가의 기억 속에 깊게 자리 잡은 풍경이 있다면.
▲이춘개가 늘 같은 풍경을 그리는 것은 그의 절망을 표출하는 행위이다. 나의 기억 속에 특히 자리 잡은 풍경은 없다. 나는 늘 지금 이 순간의 풍경에 주목하고 있다.
- 단편에서 ‘개’와 ‘포구’가 자주 눈에 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특별한 이유는 없다. 주제와 관련된 묘사를 하다 보니까 이런 사항들이 자주 등장하게 된 것은 자연스럽다.
-‘바스러져’란 표현도 자주 등장한다. 좋아하는 표현인가.
▲나는 어떤 단어에 특별히 애착하지 않는다. 같은 단어가 거듭 나온다면 그것은 나의 미숙함이다.
- 각 단편을 결말 내지 않았다. 주인공 삶의 일부를 여과 없이 찍어낸 느낌이랄까. 뭔가 후속편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작품의 ‘결말’을 선명히 쓸 수가 없다. 결말은 쑥스럽고 또 위태롭게 느껴진다. 삶은 명료한 결말로 수렴될 수가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 작품으로 ‘나만의 적막’이 훼손되는 걸 싫어하고, 최근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으로 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이제는 피곤해서 감당하기 어렵다. 이것은 내가 고립과 은둔을 자초한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세상을 관찰하고 있다. 얼굴을 마주 대는 것만이 만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의 길은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 젊은 작가의 작품도 읽는 편인가.
▲젊은 시인들의 시와 시에 대한 평론은 너무 어려워서 나는 거의 읽지 못한다. 나는 문학작품을 ‘공부 삼아’ 읽지는 않는다. 80년대와 90년대에는 나 같은 독자들도 읽을 수 있는 시와 평론이 많았는데, 지금은 별로 없다. 나는 이 점을 매우 애석하게 여긴다.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 이례적으로 작품 말미에 ‘군말’이란 이름의 긴 부가설명문을 더했다. 특별한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나.
▲내가 쓴 작품들이 모두 쓸쓸하고 답답한 이야기들뿐이어서, 작품이 그렇게 되어질 수밖에 없었던 나의 심리적 환경을 설명하느라고 이런 글을 덧붙였다. 써놓고 보니 역시 군더더기 같아서 제목을 ‘군말’이라고 했다. 작품이 아닌 객담을 들이대면서 작품을 이해해달라는 것이 추레하게 느껴졌지만, 하는 수 없었다.
- 무거운 주제보다는 가벼운 주제를 다루는 소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시대’보다는 ‘개인’을, ‘교훈’보다는 ‘공감’이 주목 받는다. 개인적으로 이런 추세를 어찌 생각하는지.
▲내가 동시대의 소설 전체를 개괄할 수는 없지만, 소설의 관심이 삶의 사소한 국면에 쏠려 있는 경향은 확실한 것 같다. 사실, 사소한 것과 중대한 것을 구별해서 말하기는 어렵다. 사소해 보이는 것이 사소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소한 것들을 추구해 들어가는 과정에서 커다란 의미들이 도출되기를 바란다. 많은 젊은 작가들은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100조 날리게 생겼는데…"삼성 파업은 역대급 특수...
- 최근 최대 관심사는 무엇인가.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회현상이 있나.
▲지난 한 달(6월) 동안 소비자 물가가 6% 올랐다. 내달에는 7%가 오르리라는 전망도 나와 있다. 이 물가고는 자연현상이 아니고 세계경제의 구조 속에서 발생한 것이다. 물가고는 코로나19의 폐허 위로 몰려오고 있다. 이 물가고는 이 사회의 어느 부분을 때릴 것인가. 또 크게 무너져 내릴 것이다. 이런 조바심이 문학적일 필요는 없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