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에서 본 '비상선언'] 시의성 있고 전형성 탈피한 재난, 인상적 연기[리뷰]
74회 칸 영화제서 먼저 본 '비상선언'
시의성 있는 재난 매력적
장르적 재미 취하고 전형성 탈피
극장 체험형 영화
송강호 재치에 박수·웃음 터져
이병헌·임시완·전도연 어벤져스급 연기 조합
[아시아경제 이이슬 기자] 1년 만에 풀어내는 리뷰다. 영화 '비상선언'(감독 한재림)을 지난해 7월 74회 칸 영화제 기자 시사회와 프리미어 스크리닝을 통해 관람했다. 고난 속에서도 전세계 영화인이 한자리에 모여들어 영화를 보는 일이 얼마나 특별한가. 그래서 칸이 더 궁금했다. 본지는 국내 언론 중 유일하게 현지 취재에 나섰다. 팬데믹 여파로 국내 극장가 상황이 악화되면서 영화들은 개봉 시기를 선뜻 잡지 못하고 시름 했다. 이로 인해 경쟁부문에 초청(출품)된 한국영화는 없었지만, 초청작을 살펴보면 팬심이 고개들만큼 쟁쟁한 작품이 많았다.
유럽은 지역에 따라 방역 체계가 달랐다. 프랑스 칸은 실내 마스크 착용 필수 규정이 적용됐고, 취재에 나선 현지 특파원도 많지는 않았다. 국내에서 출국 기준 한 달 전에 백신을 접종하지 않으면 비행기에 탑승할 수 없었는데, 운 좋게 서둘러 맞은 덕에 칸으로 향했다. 2019년 72회 칸 영화제, 이듬해 2020년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 이어 나선 74회 칸 취재였기에 그 의미가 남달랐다. 덧붙이면 73회는 공식 선정작만 발표하고 오프라인으로 영화제를 열지 않았다. 연속 취재를 통해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영화, 국내 창작자를 향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는 걸 느꼈다.
배우 송강호가 74회 칸 영화제에서 남성배우 최초로 심사위원을 맡고, 이병헌이 폐막식 시상자로 무대에 올랐다. 두 배우가 출연하는 '비상선언'은 비경쟁부문에 초청돼 뤼미에르 극장에서 상영됐다.
공개된 '비상선언'은 반가운 영화였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 전세계 기자·영화인이 한데 모여 같은 장소에서 다시 영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감회가 새로웠다.
비행기 공포증이 있는 재혁(이병헌 분)은 아이와 하와이에 가기 위해 비행기에 탑승한다. 한 남성은 비행기에 테러를 저지르겠다는 영상을 올리고, 이를 알게 된 승객들은 긴장감에 휩싸인다. 한편 형사 인호(송강호 분)는 비행기 테러에 관한 제보를 받고 조사하던 중, 용의자가 비행기에 탄 사실을 알게 된다. 그때 비행기에 발생한 갑작스러운 재난에 승객들은 공포에 질리고,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비상선언'은 등장인물이 하와이행 K1501편에 하나둘 탑승하고 승무원이 문을 철컥 닫는 순간, 관객도 함께 기내에 탑승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 내내 항공기에 함께 탑승한 듯한 착각을 하게 되는 것. 훌륭한 음향 시설과 대형 스크린을 갖춘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관람해 더 만족스러웠다.
재난영화의 흥미로운 공식을 차근차근 따라가면서도 새로운 형태를 취하려는 감독의 시도가 흥미롭다. 장르적 재미는 취하고, 그 안에서 전형성을 탈피하려는 연출이 인상적인 영화다. 극 초반, 군더더기 없이 딱 떨어진다. 캐릭터를 차근차근 소개하고 재난에 휩싸이는 과정이 빠른 템포로 전개된다.
홀로 비행기에 오른 승객 진석을 연기한 임시완은 새로운 얼굴을 드러낸다. 진석은 등장과 동시에 공기를 바꿔버리면서 극의 흐름을 가져간다. 긴장감을 불어넣으면서 쫀쫀하게 끌어가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텅 빈 눈동자로 스크린을 꽉 채운다. 기자시사회에서 외신 기자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배우는 임시완이었다. 상영이 끝난 후 "진석을 연기한 배우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흥미로운 반응이 나왔다.
"그저 우린, 아무도 원치 않았던 재난에 휩쓸린 거잖아요." 승객의 외침은 관객의 마음에 사무친다. 무서울 정도로 시의적절한 재난은 공감을 자아내며 현실적인 공포로 치환된다. 각 상황, 인물에 담은 은유도 흥미롭다. 공포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얼굴을 바꾼다. 마치 악이 인간을 시험하듯이 혐오가 고개를 든다. 이 부분에서 '부산행'이 떠오르지만 클리셰처럼 다가올 뿐, 구조적으로 전혀 다른 영화다. 실제 상황이나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도 군데군데 등장한다.
송강호를 향한 칸 관객의 사랑은 남달랐다. 특유의 호흡으로 툭 던지는 대사에 웃음이 터졌고, 공식 상영에서는 박수가 터졌다. 극을 안정적으로 받치면서 재난 상황을 관조하는 아주 중요하고 흥미로운 배역을 관록의 연기로 지탱한다. 후반 장면을 포함해 총 3번 박수가 나올 만큼 현지 반응은 좋았다.
송강호·이병헌은 '비상선언'에 없어선 안 될 보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병헌은 자칫 '재난'이라는 함정에 빠지거나 신파에 매몰될 수도 있는 역할인데, 아주 영리하게 함정을 피하면서 세련되고 묵직하게 극을 이끈다.
국토부 장관을 연기한 전도연은 배역의 한계를 탄력적인 연기로 숨결을 불어넣는다. 시나리오의 빈칸을 내공 있는 연기로 꽉 채운다. 가장 고민이 깊지 않았을까. 캐릭터를 완성한 전도연의 힘이 돋보인다. 김남길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아울러 박해준·김소진·김국희·현봉식·임성재 등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다. 캐릭터를 만드는 한재림 감독의 장기는 이번에도 빛난다.
상영 직후 칸에서 만난 감독·배우에게 엔딩에 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가 공개된 후 많은 사람과 엔딩에 대해 이야기 나누길 기다린다.
덧1, 비행기를 타고 홀로 프랑스 칸으로 향했다. 영화를 본 후 다시 비행기를 타고 집에 갈 생각에 머리가 아득해졌다. 귀국시 기내에서 안전벨트를 꼭 착용하고, 되도록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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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2, 칸 상영 버전은 국내 개봉 버전과 조금 다를 수 있다. 통상적으로 영화를 칸 영화제에서 최초 공개한 후 국내 개봉까지 영화를 다듬는다. 지난해 7월 공개된 후 1년이란 시간 동안 '비상선언'도 수정 작업을 다소 거쳤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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