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 야구의 멱살을 잡고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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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칼럼은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의 이름은 전상규. ‘와이낫’이라는 록밴드를 이끌었고 지금도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다. 그는 음악만큼 야구, 특히 엘지 트윈스를 사랑해서 야구 팟캐스트를 제작하고 잠실구장에서 시구도 했다. 심지어 스포츠 전문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할 정도니, 이쯤 되면 야구가 취미를 넘어 제2의 직업이 된 것 같다. 가끔 야구를 소재로 노래를 발표하더니 얼마 전에는 책까지 냈다. 책 제목이 의미심장한 질문이다. ‘야구도 널 사랑해줬어?’


작년 한 해, 우리 야구는 팬들을 사랑해주기는커녕 대놓고 농락했다. 시즌 중에 선수들이 숙소로 여성들을 불러 술판을 벌였다. 최선을 다해 몸을 관리하고 최고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해도 모자랄 판에, 응원하는 팬들의 열정만도 못한 해이함을 보여준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방역수칙도 어기고 거짓 진술로 역학조사에 혼선까지 초래했다. 더 이상 나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라운드에서도 별로. 도쿄올림픽에서 보여준 모습도 기대 이하였다. 많은 팬들이 떠나갔고 필자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이렇게 대충 싸우는 선수들을 보느니 차라리 대놓고 짜고 치는 고스톱인 프로레슬링을 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메이저리그라는 대안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쇼헤이 오타니 선수에게 흠뻑 빠져 아낌없이 응원하고 팬질을 했다. 필자가 오타이 선수에게 열광한 지점은 타고난 신체조건이나 천재적인 운동신경이 아니었다. 자신의 한계를 넘기 위해 그라운드 안팎에서 모든 것을 불사르는 모습에서 니체가 말한 초인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그 선수 외에도, 실력도 태도도 소위 넘사벽으로 좋은 선수들이 즐비한 메이저리그가 있는데 뭐 하러 우리 야구를 보나 싶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신토불이. 이런 표현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막상 올 시즌이 시작되니 나도 모르게 눈과 귀가 우리 야구로 향했다. 재미있는 승부도 많이 나오고 코로나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경기장에 가서 야구를 보는 재미도 쏠쏠해졌다. 이제야 정신들 차렸구나 싶어 안도하려던 찰나, 눈살 찌푸리는 뉴스들이 며칠 사이 연이어 터졌다.

시즌이 한창인데 코치들이 술을 마시다 서로 주먹질을 하고 입원까지 했다는 기사가 떴다. 대학야구에서는 판정조작, 편입비리, 운영비리 3종 의혹 세트로 대학야구연맹 회장이 물러났다는 참담한 소식도 들려왔다. 분노가 치솟으면서,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비대위원장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놔, 이 아저씨들 정말 멱살이라도 잡아야 정신을 차리려나? 야구의 맛은 언제 역전될지 모르는 아슬아슬함이다. 그런데 그 긴장은 경기를 보며 느껴야한다. 야구장 밖에서 사고가 터질까봐 아슬아슬하다면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앞에서 말한 책 ‘야구도 널 사랑해줬어?’의 저자 전상규 씨는 얼마 전에 태어난 아기 이름을 지우라고 지었는데 ‘엘지우승’의 준말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필자의 서재에는 야구카드와 사인볼로 가득한 진열장이 따로 있다. 야구의 인기가 자꾸만 식어간다지만, 아직 많은 팬들이 야구를 사랑하고 있다. 이 사랑이 보답 받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응원하는 팀이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해 경기하는 모습을 볼 때다. 이기면 더 좋지만 잘 싸우고 지는 것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자꾸 사고치고 실망시키면 사랑의 온도는 식기 마련. 야구의 멱살을 잡고 외친다. 짝사랑도 좋으니 계속 사랑하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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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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