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빚이 넘치는 우리 사회, "소는 누가 키우나?"
"연 수입 20파운드에 연 지출이 19파운드 19실링 6펜스면 행복해지고, 연 수입 20파운드에 연 지출이 20파운드 6펜스면 불행해진다." 19세기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자전소설 『데이빗 카퍼필드』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이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내핍(austerity)을 실천하라’는 간곡한 메시지를 당대에 전한 것이다. 빚에 허덕이던 부친의 투옥으로 어린 디킨스는 학교 대신 공장에 다녔다. 당시엔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하면 어김없이 철창행이었다. 이후 세상은 크게 달라졌다. 이젠 채무불이행이 발생해도 "신중하지 못한 채무자보다 무모하게 돈을 꿔준 대부자가 비난받는다"(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우리는 왜 자금을 융통하는가. 내일의 예상 소득을 기초로 오늘 빚내 학업에만 열중하려는 대학생이나, 오늘 빚 얻어 재화를 생산하고자 하는 기업이 있다고 하자. 이때, 여윳돈을 오늘 꾸어주고 내일 더 큰 액수(원리금)로 돌려받으려는 대부자가 이들 채무자(대학생·기업)와 대차계약을 맺는다면 모두에게 이득이다. 이처럼 원리금 상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금융의 편익을 누리는 것이 현대인의 일상이다.
그래서인가. 요즘 우리 사회에는 빚이 넘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016년 말 1343조원이던 가계채무(신용 기준)가 5년 새 519조(39%) 불어나 2021년 말에는 1862조원이 됐다. 동 기간 중 기업채무(신용 기준)는 1642조에서 2355조로 713조원(43%)이, 국가채무(D1)는 627조원에서 967조로 340조원(54%)이 각각 늘었다. 그 결과, 가계·기업·정부의 빚은 지난 5년간 모두 1573조원이나 폭증했다(3612조→5185조). 이는 동 기간 명목국내총생산(GDP) 증가분(1741조→2057조)인 316조원의 무려 다섯 배에 해당한다. 빚 상환 가능성에 대한 맹신 없이는 지속 불가능한 규모요 팽창속도다. 이런 맹신이 언제 불신으로 바뀔지 모른다. 위기는 그렇게 온다. 어떻게 해야 하나.
성장을 통해 빚을 갚는 것 말고는 달리 왕도가 없다. 급속히 늙어가는 한국 경제가 과중한 채무를 안고도 성장할 수 있으려면, 내핍의 미덕을 되살리는 일이 지금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왜 그런가.
지난 수년간 서울 및 수도권의 집값·전셋값 폭등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소득(플로우)과 주택(스톡) 간 연결고리가 사라졌다. 무주택 서민의 근로소득은 그저 생계유지용일 뿐, 땀 흘린 돈으로 집 장만하는 일이 더이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플로우와 단절된 채 스톡 스스로 가치를 무한 증식한다는 새 경험칙 덕분에, 다들 대박 환상을 좇아 ‘영끌’ 대출 및 ‘빚투’ 재테크에 올인하게 됐다. 이제 "소는 누가 키우나?"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플로우와 스톡 간 연결고리의 복원이다. 오랜 현금(퍼주기) 중독과 빚 중독에서 국민을 구해야 한다. 금단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복지 정책을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디킨스의 내핍을 실천하며 성실히 일하는 개인에게 보상이 가도록 해야 한다. 구조개혁을 통한 총요소생산성(TFP)의 제고와 재정건전성(재정의 중장기 내핍기조) 확립도 당연히 최우선과제에 포함된다. 단, 적절한 단기 경기부양은 성장에 유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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