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우리 처가 작년에 좀 어지러이 걸었던 것으로 국민들이 보시는 것 같아 되돌아보게 됩니다. 저 역시 작년을 되돌아볼 때, 수사기관의 장으로서 그 무게감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였는지 반성이 됩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최근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는 또 ‘궁하면 변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 주역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올해 공수처의 좌우명으로 삼을 만하다고도 했다. 공수처의 변화를 요구하며 폐지까지 언급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지난 1년 공수처가 보여준 행태는 아무리 출범 첫 해라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실망 그 자체였다. 검찰 출신을 철저하게 배제한 탓에 수사능력의 부재는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탄생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적 중립성마저 지키지 못하며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일이라고는 감사원이 이미 사실관계를 다 밝혀서 넘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수사해 검찰로 송치한 것과 ‘스폰서 검사’ 사건으로 2018년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전 부장검사가 7년 전 1000만원의 뇌물을 받고 두 번에 걸쳐 93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를 밝혀내 기소한 게 전부다.
공수처는 작년에만 윤 당선인을 30번 고발한 친정부 성향의 시민단체 ‘사세행’의 고발장을 토대로 야당 대선후보였던 윤 당선인을 무더기 입건해 수사했지만 어떤 범죄 혐의도 밝혀내지 못했다. 공수처장의 ‘선별입건’ 제도를 없앤 개정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이 시행된 지 열흘이 안 된 만큼 모두 김 처장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의 핵심 피의자 신분이었던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휴일을 이용해 공수처장의 관용차로 모셔온 ‘황제 에스코트’ 사건이 보도되자, 공수처는 다른 관용차는 체포피의자 호송용이라 뒷문이 열리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는 거짓 해명을 내놨고, 사실을 보도한 기자들의 뒷조사를 벌였다.
이 밖에도 공수처가 수사 과정에서 저지른 위법한 압수수색과 무분별한 통신조회 사례들을 되돌아보면 과연 ‘인권친화적 수사’를 표방한 기구가 맞는지 의문이 든다.
윤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이 50일도 채 안 남은 지금 김 처장이 할 일은 수사력을 집중하고도 결론을 내지 못한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이나 ‘이성윤 고검장 공소장 유출’ 사건 등 주요사건 수사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뒤늦게 반성글을 올리며 ‘궁하면 변하자’고 직원들을 독려하는 건 그 다음 문제다.
‘고발 사주’ 사건은 공수처나 김 처장이 가장 공들여 수사해온 사건이다. 이미 손준성 검사와 김웅 국민의힘 의원 등 핵심 피의자들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됐고, 광범위한 통신자료 조회를 통해 추가 관련자에 대한 확인 작업도 마친 상태다.
사건의 본령은 ‘직권남용’이라며 혐의 입증을 자신했던 김 처장은 “신속한 수사로 대선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가 지난해 말 갑자기 국회에 출석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말을 바꿨다.
수사 과정에서 제보자 조성은씨가 뉴스버스의 첫 보도 직전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을 만난 사실이 드러나 ‘제보 사주’ 의혹이 제기됐고, 박 원장이 입건까지 됐지만 공수처는 관련 수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이제 대선도 끝났으니 혐의 입증에 자신이 있다면 기소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할 것이고, 자신이 없다면 수사 실패를 자인하고 수사를 종결해야 할 때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김 처장의 몫이다. 법조계에서는 수사 초기부터 설사 제보 내용이 사실이라고 해도 직권남용죄 성립이 어렵다는 견해가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김 처장이 윤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할 때까지 시간을 끌다가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84조를 구실 삼아 ‘공소권 없음’ 결론을 내리는 비겁한 선택을 하지는 않길 바란다.
공수처가 지난해 5월부터 수사해온 ‘이성윤 고검장 공소장 유출’ 사건 역시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는 사건이다. 공수처는 이 고검장을 기소한 수원지검 수사팀에서 공소장을 유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진행했지만 예측은 빗나갔다.
대검 감찰부의 조사 결과 수원지검 수사팀 관계자 중에는 형사사법정보시스템(킥스·KICS)을 통해 이 고검장의 공소장을 열람한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이 고검장의 측근 검사장 PC에서 유출된 공소장 편집본과 흡사한 임시파일이 발견됐을 뿐이다.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위법한 압수수색 논란과 ‘하청 감찰’ 논란은 공수처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렸다. 이 사건 역시 법리적으로 공무상 비밀누설죄 성립이 어렵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수사 방향을 잘못 잡았고, 법리 판단이 틀렸다면 한시라도 빨리 인정하는 게 방법이다. 시간을 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검찰에도 서둘러 마무리해야 할 사건이 있다. 바로 2년 전부터 검찰이 수사해온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이다.
2020년 3월 31일 MBC가 ‘검언유착’ 의혹을 처음 보도하기 훨씬 전 황희석 당시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같은 당 최강욱 대표와 함께 웃으며 찍은 사진을 공유하며 “이제 둘이서 작전에 들어갑니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불과 30분 뒤 황 의원의 해당 게시물은 ‘검언유착’ 의혹의 제보자 지모씨의 페이스북에 “부숴 봅시다! 윤석렬 개검들!!"이라는 글과 함께 공유됐다. 제보 과정에 여권 인사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했음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정치권력과 언론이 유착했다는 ‘권언유착’ 내지 ‘정언유착’ 의혹은 검찰에 고발까지 됐지만 수사 진전은 없었다.
이제는 ‘채널A 강요미수’ 사건으로 정리가 됐지만 ‘검언유착’ 사건은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을 구실로 검찰의 힘을 빼는데 불쏘시개가 됐던 사건이다. 언론보도가 나간 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의혹이 제기됐다는 이유만으로 한동훈 검사장을 직무에서 배제시키고 법무연수원으로 좌천시켰다. 한 검사장이 윤 총장의 측근이라는 이유로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 당선인의 수사지휘권도 배제했다.
추 장관이나 사건을 수사한 정진웅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검사는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했지만 정작 공개된 녹취록에서도 한 검사장의 혐의를 입증할 단서를 찾지 못하자 정 부장검사는 추가 압수수색에 나섰고, 결국 현직검사의 ‘독직폭행’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에 몸을 던진 정 부장검사는 ‘독직폭행’ 혐의로 기소가 됐지만 차장검사로 승진한 반면 기소도 안 된 한 검사장은 법무연수원 진천 본원과 사법연수원 등 한지를 떠도는 신세가 됐다.
결과는 참혹했다. ‘검언유착’이라는 건 검찰과 언론이 유착했다는 의미인데 정작 검찰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를 기소하면서 공소장에 한 검사장을 공범으로 적시조차 하지 못했다. 혐의 입증을 자신했던 ‘검언유착’에서 ‘검’을 뺀 절반의 기소가 이뤄진 셈이다. 재판 결과는 더 참혹했다. 법원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며 이 전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수사 개시 2년이 다 되가는 아직까지도 한 검사장을 기소하지 못하면서 사건을 마무리하지도 않고 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과 여러 간부들은 한 검사장을 불기소 처분하고 사건을 종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수차례 올렸지만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이성윤 현 서울고검장은 한 검사장의 휴대전화 포렌식을 이유로 묵살했다. 그 과정에서 이 검사장의 상식 밖의 태도에 반발해 사표를 던진 검사도 있었다.
범죄 혐의를 입증할 책임을 진 수사기관이 증거분석을 못했다는 이유로 사건 처리를 해를 넘겨가며 미루는 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수사 초기 혐의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들이 있다고 자신했던 사건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정 부장검사의 ‘독직폭행’ 외에도 여러 가지 불미스런 일들이 있었다. 바랐던 대로 한 검사장을 잡아넣지 못해 안달이 난 추 전 장관은 휴대전화 비밀번호 해제를 강제할 수 있는 법률 제정을 지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공영방송사인 KBS는 이 전 기자가 한 검사장과 나누지도 않은 대화 내용이 녹취록에 담겼다는 대형 오보를 낸 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제재를 받고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당했다.
이제는 검찰 스스로 사건을 마무리해야 할 때다. 한 검사장이 이 전 기자와 유착, 수감 중인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를 협박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여권 인사에 대한 비리를 제공할 것을 강요한 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한 검사장도 재판에 넘겨 법원의 판단을 받게 해야 할 것이고,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불기소 처분해야 한다.
형사재판을 맡은 판사가 일정한 기간 내에 피고인의 유죄 혹은 무죄, 둘 중 한 가지로 결정을 해야 하는 것처럼 수사기관 역시 기소 혹은 불기소 결정을 이유 없이 끌어선 안 된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을 굳이 끌어오지 않더라도, 기소도 불기소도 하지 않고 피의자 신분을 장기간 유지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권한 남용이고 인권침해다. 두 달 뒤 윤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고, 법무부 장관이 바뀐 뒤에야 사건을 종결할 것인가.
한 검사장을 기소하지 못하고 사건을 종결했을 때 그동안 한 검사장 혐의 입증을 자신했던 이 고검장이나 추 전 장관 등이 맞게 될 역풍은 각자가 감수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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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에서 만약 이재명 후보가 당선됐다면 검찰이 이 사건을 몇 년을 더 끌며 결론을 안 낼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이처럼 후임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수사기관의 사건 처리 과정이나 결론이 달라지는 웃지 못할 상황을 만든 건 인사와 수사지휘를 통해 검찰의 중립성을 훼손시킨 추 전 장관과 박범계 법무부 장관, 그리고 이들을 방치한 문 대통령의 책임이다. 다음 정부에선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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