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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의 사이언스빌리지] 알파·델타·오미크론…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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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發 코로나 한달만에 우리나라로
과거엔 이동수단 없어 공간적 고립
호기심 가득한 인류 운송수단의 발명
유럽의 미생물까지 남미로 건너가
콜롬버스 대항해로 신대륙 초토화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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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 Columbus, 에어버스 Airbus, 메타버스 Metaverse….’ ‘알파 Alpha, 브라보 Bravo, 찰리 Charlie, 델타 Delta, 에코 Echo….’


저의 군 복무 시절 보직은 통신용 알파벳을 사용하는 작전병이었습니다. 군사 작전에서는 소통에 혼동되지 않도록 영문 알파벳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알파벳이 포함된 단어를 씁니다. 특수한 분야에서 사용하는 이런 알파벳에는 그리스어로 된 것도 있죠.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원주율이나 각도를 표시하는 파이π나 세타θ는 널리 사용됩니다. 물론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한 엡실론ε, 람다λ, 뮤μ 등도 있지만 알파α, 베타β, 감마γ, 델타δ 그리고 오메가ω처럼 일상에 자주 사용되는 문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생소한 그리스어 알파벳이 일상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오미크론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변종을 구별하기 위한 이름에 등장했죠. 최근까지 지배종은 네 번째 변종인 델타 바이러스였습니다. 오미크론은 순서로 보면 13번째입니다. 이름이나 순서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변종 발견의 순서대로 알파벳이 붙여진 것이죠. 중요한 것은 우리가 대유행에 정신없이 견디는 동안 바이러스도 무척 부지런해졌다는 겁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곳은 중국 우한입니다. 지도를 보니 서울에서 상하이까지의 거리만큼 다시 내륙으로 가야 하는 먼 곳이더군요. 감염병은 2019년 12월에 우한에서 시작했고 제가 사는 대한민국 고양시에는 이듬해 1월에 첫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그 먼 거리를 어림잡아 한 달여 만에 도착한 겁니다. 과거에는 물리적 지형이나 거리가 인류의 이동에 있어서 가혹한 경계였을 겁니다. 애초부터 날개를 가지지 않은 인류의 삶에서 멀리 떠난다는 것은 참혹하고 두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혹독한 거리감과 지형을 제거한 운송수단의 변화가 아니었다면 대부분 사람은 터전에서 벗어나는 걸 두려워했을 겁니다. 어쩌면 그 경계와 공간적 고립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고생대 모든 대륙끼리 연결 '판게아'
여섯개로 갈라졌지만 정서적 연결
문명의 통합 통해 수직적 서열 형성

인류는 호기심이 가득한 생명체입니다. 결국 운송수단은 그 호기심을 상상의 영역에서 꺼내 실제 세상에 옮겼죠. 1493년, 배를 타고 험난한 대서양을 건넜으니까요. 그런데 당시 유럽에서 건너간 건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 그리고 그 몸에 타고 있던 미생물까지 건너갔죠. 그들이 도착한 곳에도 생명체는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외래 생명체와 토착 생명체는 누구도 계획에 없던 조우를 한 겁니다. 소위 생태학적 천적이 존재하지 않는 장소로 옮겨진 거죠. 1518년 천연두를 시작으로 마치 비행기가 활주로에 연착륙하듯 차례차례 들어가 17세기까지 남아메리카를 초토화했습니다. 약 500년 전 생태학적으로 대서양을 지도에서 지우고 아메리카와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의 경계를 붙여버린 사건이 바로 콜럼버스 대항해였던 거죠. 그런데 지금의 여섯 개 대륙이 형성하기 전에 실제로 대륙이 하나로 연결된 시기가 있었습니다. 1912년 독일의 기상학자 알프레드 베게너(Alfred Wegener)는 이 대륙을 판게아(Pangaea)라고 불렀습니다. 이름은 ‘지구 전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팡가이아(pangaia)에서 유래했죠. 그 시기가 약 2억5000만년 전이고 현재의 대륙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약 6500만년 전입니다.

지금은 여섯 개의 거대한 대륙이 거대한 바다에 나뉘어 있고 대륙 안에도 수많은 경계로 국가가 나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길은 늘 열려 있습니다. 대유행 이전 하늘에는 하루에만 22만5000대의 에어버스가 지구 상공을 돌며 사람과 동식물 그리고 문명의 산물을 옮겼습니다. 간혹 ‘국경 없는’이란 수식어를 듣게 되는데, 대륙과 국가의 경계가 무색할 만큼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초공간의 시대를 말합니다. 지금의 운송수단은 인류 터전을 거대한 판게아로 봉합하는 실과 같습니다. 얼마 전 오미크론이 아프리카의 보츠와나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우리나라의 우세종이 된 것을 보면 지금의 국경과 대륙은 그저 논리적 구분일 뿐 경계가 무의미해 보입니다.


하늘길뿐만 아니라 온라인은 지구를 하나의 정서적 부락으로 만들었습니다. 현 인류는 같은 문명권 부락에 살고 있다고 믿고 살아갑니다. 요즘 더욱 실감하게 되죠. 우리나라 노래와 영화로 전 세계인이 춤을 추고 달고나를 만들어 먹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명의 대륙적 봉합이 수평적으로 보이겠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수직적 서열이 형성되더군요. 우리는 한 번도 만나지도, 아니 앞으로도 만날 일조차 없는 사람들과도 비교하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인을 줄 세우고 나의 위치가 어디쯤인지를 매일 점검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 칸이라도 더 올라가기 위해 성장과 효율이라는 키워드를 꺼냅니다. 늘 바쁘고 부지런하게 살며 이제는 먹고살 만한 것 같은데, 동시에 느끼는 박탈감은 넓혀진 넓이에 비례해 커집니다. 그래도 이게 옳다고 믿고 살아왔지요.


감염병시대 메타버스는 새로운 세계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新차별
최대다수의 행복 공리주의 능사 아냐
공존·배려 필요한 부분들 고민해야

그런데 어느 날 생태학적 아수라장이 된 겁니다. 지금 어떤가요. 우리가 옳다고 믿었던 것, ‘국경 없는’이란 수식어가 꼭 옳았던 것일까요.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실세계 국경이 봉쇄됐습니다. 개방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고 쇄국적으로 보일 수 있던 그 경계와 고립을 공공연하게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죠. 그동안 국가의 역할에서 작은 정부를 외치던 인류가 오히려 강한 정부에 매혹을 느낍니다. 우리가 그동안 옳다고 믿었던 제도적, 윤리적 가치들이 다시 심판대에 올라오는 시대가 된 거죠. 가령 감염병으로 병상이 모자라면 이미 병실을 차지한 가망 없는 노인과 이제 막 확진된 젊은 사람을 두고 병상에 누구를 눕힐지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거대한 판게아로 봉합하는 또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메타버스(확장가상세계)입니다. 이미 실세계와 가상세계마저 봉합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지요. 추운 핀란드의 ‘윈터 원더랜드 머신’에 눈을 퍼서 담으면 더운 싱가포르의 래플스시티 매장에 눈을 뿌려줍니다. 두 세계가 결합하니 멋진 일이 벌어집니다. 어쩌면 메타버스는 신자유주의 이후 격화하는 격차와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출구일 수도 있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이룰 수 없는 일들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거대한 봉합이 이뤄지기 전인 지금이 미처 생각이 닿지 못한 부분은 없는지 고민해야 할 지점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얼마 전 음식점에 설치된 주문 키오스크 앞에서 어느 노인 부부의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노인들은 화면을 몇 번 만지다가 그만 발길을 돌려 문을 나서더군요. 점원이 도와준다고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겠지만, 타인에 의지하는 존재가 돼버린 무력감은 도와줄 수 없지요. 이제 바뀐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면 차별 대상이 되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 노인들은 비대면(언택트) 시대에 비용을 줄이려는 기업의 미래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으로 일종의 디지털 고립이고 꽤 구체적인 차별의 대상이었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같은 서비스라면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이겠지만 먹고 사는 기본적인 삶의 양식은 다른 문제입니다. 몸은 여전히 물질세계에 있는데, 삶은 메트릭스에 존재해야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겁니다.


최근 메타버스로 기획되는 많은 사례를 보면 꽤 흥미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모든 축복은 변화를 받아들인 사람에게만 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니까 마치 백신을 맞고 항체를 탑재해야만 누리는 패스포트라는 겁니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거대한 기계로만 보이는 세계에 참여가 아니라 복종해야 한다는 감정으로 다가오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저도 언젠가 그 노인들처럼 쩔쩔매다가 변화 앞에 무력화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때가 오면 삶의 양식 대부분을 포기하고 스스로 고립되는 게 안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수학에는 전체(All)를 의미하는 논리기호가 있습니다. 알파벳 A를 뒤집어 ‘∀’로 표현하죠. 그리고 어떤 집단 혹은 집합에 존재하지 않는다(Not an element)는 의미로 ‘?’기호를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뺄셈이 들어 있는 겁니다.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는 미래라는 거대한 기계에는 어떤 논리적 기호가 프로그램돼 있었을까요. 노인이 느낀 무력감은 공리라는 논리로 계산된 의도된 뺄셈일까요. 아니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오류 정도로 여겨야 할까요. 누군가는 전체(∀)를 고민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런 고민 없이 최대 다수의 이익을 말하는 공리주의적 잣대를 대는 게 능사는 아닐 겁니다. 지금의 우리 모습이 질병을 잔뜩 싣고 신대륙으로 가고 있는 콜럼버스는 아닐까요. 답을 얻지 못한 저는 우주의 밤하늘에 저만의 신호로 질문을 보내 봅니다. 위스키 호텔 에코 로메오 에코 알파 로메오 에코 위스키 에코 골프 오스카 인디아 노벰버 골프?…Where are we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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