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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개성은 강한데 산만해진 해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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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감독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

[이종길의 영화읽기]개성은 강한데 산만해진 해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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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개봉한 ‘해적: 도깨비 깃발’은 전편을 기억하는 이에게 아쉬움을 남기는 영화다. 전편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은 다양한 갈등 구조를 담고 있었다. 고려 무관 장사정(김남길)에게 모흥갑(김태우)은 철천지원수다. 조국을 저버리고 형제나 다름없던 황중근(박해수)을 죽였다. 여월(손예진)에게는 단주로 모시던 소마(이경영)가 그렇다. 재물에 눈이 멀어 부하들을 팔아넘기려고 해 여월의 반발을 자초했고,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관계로 이어졌다.


장사정과 여월의 관계는 또 다르다.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는 사이에서 공동의 적에 함께 맞서며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이처럼 갖가지 긴장 요소는 코미디로 덧칠된 영화 전개의 무게중심이자 배우들이 다채로운 연기를 펼치는 발판이 됐다. 풍성한 감정을 끌어내 모험 장르의 매력을 한껏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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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도깨비 깃발’에선 전편의 장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산적과 해적들이 숨겨진 고려 왕실의 보물을 찾기 위해 모험에 나설 뿐이다. 유일하게 이들을 가로막는 부흥수(권상우)는 모흥갑만큼 강렬하지 않다. 주인공 우무치(강하늘)와의 관계마저 얕아 기능적 역할을 해내고 소모된다. 구조적 문제는 주연들의 무리수 남발로 이어진다. 하나같이 입체적 연기를 포기한 채 과장된 표현을 반복한다. 이야기의 밀도보다 배역의 색깔로 밀어붙이는 일본 B급 판타지물을 닮아간다.


우무치에게서 장사정의 진중함은 기대할 수 없다. 너저분하게 뻗친 머리로 연신 고함만 외쳐댄다. 강하늘이 단조로운 흐름을 벗어나려고 직접 고안한 설정이다. 그는 "천방지축 느낌을 단번에 전하면서 무식한 성격을 부각하고 싶었다"고 했다. 과장된 표현은 영화 내내 계속된다. 단순화된 감정선에 이야기의 기승전결은 탄력을 받을 리 만무하다. 강하늘은 "우무치보다 다양한 배역들과 조화가 우선인 작품"이라며 "다른 배우들과 호흡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반응할지를 더 고민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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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계획대로라면 이 영화는 전편보다 코미디가 빛나야 한다. 그런데 밑바탕은 이미 전편에서 다뤄졌던 산적과 해적의 동거다. 전편에서는 중심에 철봉(유해진)이 있었다. 양측을 오가며 자조 섞인 말을 쏟아내 웃음을 자아냈다. 그를 대체하는 막이(이광수)는 다른 배역들과 어울리기보다 주체적이다. 시종일관 강한 톤으로 자기 색깔을 내기 바빠 슬랩스틱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김성오, 박지환 등 조연들도 다르지 않다. 주연들 못지않게 과장된 말투와 행동으로 일관해 전반적인 분위기를 산만하게 한다.

고조된 연기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한효주는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해적선을 통솔하는 단주 해랑을 맡았다. 이전 작품들과 호흡, 발성, 말투 등은 판이하다. 전편에서 손예진이 보인 연기를 그대로 답습해 인위적인 느낌이 짙게 나타난다. 한효주는 "발성이 가장 고민됐다"고 했다. "여성 리더로서 카리스마를 보여줘야 하는 배역이다. 대사도 많은데 목소리까지 크게 내야 해서 부담이 컸다. 지금까지 많은 작품에 출연했으나 이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연기한 적이 없다. 무술 동작을 연마하듯 일주일에 2~3회 발성 훈련을 했다. 촬영장에 출근하면서도 적당한 목소리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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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더 큰 문제는 해랑의 존재감이다. 여월과 달리 대립하거나 갈등하는 배역이 부재하다. 보물을 찾는 여정에서 최종 결정권을 가졌을 뿐 별다른 역할이 없다. 부흥수의 졸개들과 싸우고 파도에 휩쓸리는 해적선을 구하는 데 머문다. 후자는 역동적으로 담기지도 않는다. 고래고래 내지르는 외침이 특수효과와 음악에 묻히기도 한다. 한효주는 "전작의 여월과 연결되기보다 새로운 배역으로 생각하고 연기에 임했다"고 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전편의 후속으로 쓰였다. 김남길, 손예진, 유해진 등의 섭외가 불발돼 출연진은 전면 교체됐다. 시나리오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초반에 두세 신가량만 추가됐을 뿐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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