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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금융시장을 정치논리로 재단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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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 취업이 안돼 신용도가 낮아 은행이 아닌 곳에서 돈을 빌렸는데 은행 수준의 이자만 내는 나라. 지금 당장 목돈이 없어도 대출로 내집을 살 수 있는 나라. 대출금리가 계속 올라도 장사가 잘 안돼 돈 갚기가 어려우면 이자를 깎아주는 나라.


여야 대선 후보들이 내걸고 있는 대부분의 금융공약들은 현 조건에서 적은 비용으로 자금조달이 어려운 저소득층과 청년층 등 상대적인 금융 취약계층들을 향하고 있다. 장기적인 금융산업의 발전을 꾀할 수 있는 금융산업 지원정책과 발전방향을 다룬 공약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이자를 깎아주거나 돈을 더 많이 빌릴 수 있게 하겠다는 식의 금융소비자 공략 공약들이다. 이런 공약들이 반복되는 것은 어쩌면 지금의 금융정책이 금융 취약계층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문제는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이다.


윤석열·이재명 두 대선 후보는 부동산을 살 때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각각 80%, 90%로 완화해 집을 더 수월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무주택자나 청년·신혼부부 등 실수요자들에 한해서만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LTV 70%를 넘긴 적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80~90% 숫자는 파격적이다.


예컨대 LTV 80~90%를 적용하면 3억짜리 주택을 살 때 3000만~6000만원만 있으면 된다는 얘기다. 안정적인 부동산 시장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과거 외환위기때처럼 집값이 20%만 떨어져도 이 집은 ‘깡통주택’으로 전락한다. 또 젊은층일수록 고위험·고수익 자산을 선호한다는 측면에서 대출로 수월하게 내집 마련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되면, 이후 상환 능력이 생기더라도 빚을 갚기 보다 리스크가 큰 다른 자산에 투자해 자산거품을 키우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과도한 가계부채 증가를 막기 위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DSR 조정 없이 LTV만 완화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만 19~29세 청년들에게 연간 100만원씩 청년배당을 지급하고 은행 수준의 금리로 최대 1000만원을 빌려주겠다는 이 후보의 청년배당·청년기본대출 공약도 효과 면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20대 표심이 이번 대선에서 캐스팅보트라는 점에서 공약이 나온 배경은 수긍이 되지만, 현실적으로 월 10만원도 안되는 청년지원금이 청년의 삶 개선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일각에서는 1000만원의 기본대출금이 2030 청년들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다 대출)·빚투(빚내서 투자)를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시중은행의 예대금리차(예금과 대출 금리 차)를 투명하게 공시토록 하겠다는 윤 후보의 공약도 효과를 내기는 어려워보인다. 금리는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으로, 은행권은 그동안 자율규제인 ‘대출금리 체계 모범규준’을 통해 가산금리와 우대금리를 산정·운영해왔다. 예대금리차를 좁힌다는 명목으로 예금금리가 올라가도 은행은 수익성 유지를 위해 시차를 두고 대출금리를 같이 올릴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한 예대금리차를 주기적 공시하는 것만으로는 간극을 좁히기 어렵다. 이미 금융당국이 예대금리차가 벌어질 때마다 금리수준을 점검하고 있는 것과 효과면에서 별반 다르지 않은 공약이라는 얘기다.


안철수 후보가 소상공인 대출 만기연장·이자상환 유예 조치를 인상 전 대출금리를 적용해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논란이 많다.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이를 반영해 대출금리가 올라가는 시장의 논리를 특정계층에만 적용하지 않겠다는 얘기인데, 형평성에 맞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코로나19 대응 금융지원 정책 정상화를 미루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정책의 효과와 실현 가능성을 살피기보다는 정치논리로 시장을 바라보고 표심에 구애하는데 급급해 엇박자 공약들만 반복돼 나오는 현실이 안타깝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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