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루트] 조선 후기 '최고 명필'이 쓰다‥ '인흥군 묘계비'
국내 현존하는 4기의 한글 비석 중 하나‥ 한글 및 서체 특이성
[아시아경제 라영철 기자] 경기 포천시는 지난달 향토유적보호위원회를 열어 '인흥군(仁興君) 묘계비(墓界碑)'와 '창주 이성길의 묘', '포천 관아터'를 각각 시 향토유적으로 지정했다.
그중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 540-3번지 일원에 있는 '인흥군 묘계비(포천시 향토유적 제53호)'는 낭선군(郞善君) 이우(李?)가 1686년에 '이곳이 아버지 인흥군의 묘역임'을 표시함과 동시에 훼손을 막기 위해 세운 것으로 기록돼 있다.
조선 중기 왕자 인흥군(1604~1651)은 선조의 제12 서자다. 이름은 영(瑛), 자는 가온(可?), 호는 취은(醉隱)·월창(月窓)이다.
'묘계(墓界)'란 조선 시대에 품계에 따라 정한 무덤의 구역을 말한다. 인흥군 묘계비는 왕자 묘에서 남쪽으로 250m 떨어진 묘역 진입로 주변 경작지에 위치하고 있다.
비(碑)는 지표에 노출돼 지대석 위에 정사각형 비대좌(80cm×80cm×53cm)와 대리석 재질의 비신(151cm×40cm×40cm) 사모 지붕형 상단이 구슬 모양으로 장식된 옥개석(屋蓋石)이 올려진 비신(碑身)을 제외한 모든 석재는 화강암이다.
비(碑)는 조선 후기 최고 명필 낭선군의 친필이 새겨진 국내 현존하는 4기의 한글 비석 중 하나다. 비문은 비신의 네 방향, 각 면마다 다양한 서체로 새겨져 있다.
북쪽 상단에는 고문체의 전자(篆字)로 써진 '大明', 하단에는 경고문구로 된 한글고어 "이 비가 극히 녕검??니 ???심도 사람이 거오디 말라" 가 있고, 남쪽에는 북면과 동일한 서체로 '朝鮮'이라는 각자와 함께 하단에는 비의 건립 연대가 명시돼 있다.
동쪽면은 북·남면과 동일한 서체로 '國王子墓所'라 돼있고, 서쪽에는 '永平 永平治東 梁文 塔洞'이라고 묘 위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 비의 금석학적 가치를 높여주는 것은 20자 5행의 "이 비가극 히념검?? 나???심도 사람이지 오디말라" 라는 한글 고어체다.
"이 비가 극히 영거하니 생심(生心: 어떠한 생각으로라도)도 사람이 거오(倨傲:거만스럽게 낮추어 봄)하지 말라" 라는 경고성 내용이다.
비의 건립 연대는 남쪽 하단의 명문으로 보아 인흥군의 장남인 낭성군의 묘역을 표시하기 위해 1685년(숙종 12) 이 비를 세우고 비문을 친필로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4가지 설체로 이뤄진 이 비문은 당시 명필로 명성을 떨쳤던 낭성군의 친필이라는 점과 한글 고어의 명문, 서체의 특이성을 지녀 역사적·국문학적·당대 교류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
세종대왕이 모든 백성에게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글을 만든 지 올해로 575년이다. 1446년 세종 임금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이후부터 구한말까지 우리 땅에 세워진 한글 비석은 현재 4점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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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바현 다테야마시 사찰 다이간인에 있는 한글 사면 석탑 1기까지 합하면 한글 창제 후 구한말까지 조선조 500년 동안 만들어진 한글 비석은 5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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