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새 20대 노동자 4명 추락사…빼앗긴 청춘에 분노하는 청년들
안전 보장되지 않은 환경에 방치된 청년들...안전공단 시정 조치 무색
특성화고노조 "국회의원 아들은 산재 명목 50억...잔인한 불평등 개선돼야"
전문가 "추락사 고질적 문제...하청 노동자 사고는 개인 부주의 아닌 환경 책임"
[아시아경제 김서현 기자] "오늘도 떨어져 죽었다!" , "죽음의 행렬을 멈춰라!"
최근 20대 청년들이 고층 건물 외벽 청소를 하다 연이어 추락사하는 등 목숨을 잃는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기업의 관리 감독 책임 문제와 함께,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일하는 노동환경 자체를 바꾸자는 목소리가 청년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전문가는 우리 사회에서 하청 노동자가 처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7일 오전 10시 48분쯤 인천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15층에서 20대 청년 A씨가 외부 유리창 청소 작업 중 40m 아래 지상으로 떨어져 숨졌다.
앞서 지난 9월에는 구로 아파트 외벽청소를 하던 23세, 이어 같은 달 9일에는 공덕역 환기구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27세, 10일엔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에서 25세 청년이 수십 미터 아래로 추락해 모두 목숨을 잃었다. 한 달 새 4명의 20대 노동자가 추락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현황분석에 의하면 2020년 기준 지난 5년간 산업재해는 약 1만8000건 이상 증가했으며, 그 중 2800건이 18~29세 연령층에서 발생했다. 비율로 보자면, 전체 산업재해가 20% 가량 증가하는 동안 18~29세 연령층에서는 무려 34%가 증가했다. 이는 60세 이상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수치다.
청년들은 작업 안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환경에서 일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도급인 등 사업주는 근로자의 추락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추락, 낙하 및 붕괴 등의 위험 방지 및 보호에 필요한 가설기자재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A씨의 추락사고 발생 이전에 시정 요청이 있었음에도, 작업자를 보호하는 보조밧줄은 구비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A씨에게 업무를 지시한 청소 업체는 지난 24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보조 로프, 모서리보호대 구비' 등 안전 장비를 갖추라는 시정 조치를 받았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작업 속도가 줄어들어 비용이 더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시정 조치를 무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발생한 사고에서도 안전 장비는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지난 9월 구로 아파트 외벽청소를 하다 목숨을 잃은 B씨 역시 작업 전부터 이미 마모돼 있던 밧줄을 사용했으며, 사고 당시 보조 로프가 연결돼 있지 않은 상태였다.
민주노총 특성화고노동조합이 서울 동대문구 병원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어 지난 27일 추락사로 목숨을 잃은 청년 노동자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특성화고노동조합
원본보기 아이콘이같이 청년들의 허망한 죽음이 잇따르자, 청년 노동자들이 촛불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 민주노총 특성화고노동조합은 지난달 29일 서울 동대문구 한 병원 앞에서 추모 촛불집회를 열어 "청년 노동자들은 어제도, 오늘도 떨어져 죽고 끼어죽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날 촛불을 든 청년들은 충남, 인천, 서울 등에서 모였다. 일부 청년 노동자는 헬멧·벨트 등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A씨에게는 없었던 보조밧줄을 양손에 든 채 집회에 임했다. 이들은 "누더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은 소용없다"며 "청년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기업을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최서현 노조위원장은 "국회의원 아들은 산재 명목으로 50억을 받는 반면, 어떤 노동자들은 163m 높이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참혹한 죽음의 행렬, 잔인한 불평등을 바꿔야 청년 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는 하청 노동자가 산업안전보건법의 아래 보호 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환경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노무사는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고질적인 문제다. 기술이 많이 발전했음에도, 하청 노동자는 관심 대상이 아니"라며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에게 사고의 책임을 돌리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데, 노동자 개인의 부주의가 아닌 환경의 문제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청 노동자는 정해진 시간 안에 빠르게 작업을 해내서,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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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소규모 현장일 수록 위험도는 더 커진다"며 "현장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잘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확률이 높다. 정부에서 안전, 보건에 더 많은 예산을 할애해 현장에서 기본적인 안전 수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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