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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루트] 선비 아내, '최초 여성 의병장'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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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 외당 유홍석 의병활동 지원

[아시아경제 라영철 기자] 국가보훈처에서 훈장과 포상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약 1만 4300명이다. 이 가운데 여성은 전체의 1.8%인 270여 명에 불과하다. 유관순 열사를 포함한 극소수 여성 독립운동가들 말고는 대부분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독립군의 군복을 만들고, 군수품을 운반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일을 주로 맡았다.

이들은 학생·교사·상인·농민·기생 등 다양한 위치에서 나라를 구하는데 신분과 성별의 구분은 없다는 신념으로 스스로 독립운동의 주역이 됐다.


특히 윤희순(尹熙順, 1860~1935)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병장'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그녀는 대의명분을 중요시하는 유교 집안에서 교육받고 자랐으며, 타고난 성품이 바르고 총명했다.


항일 의병과 독립운동의 기초가 됐던 화서 학파 고흥 유씨 가문으로 출가해서는 시아버지 외당(畏堂) 유홍석(柳弘錫, 1841~1913)을 도와 항일 의병 활동에 참가했다.

일제 식민 통치가 극에 달했던 1930년대 시아버지, 남편, 그리고 아들마저 잃으며 40년의 독립운동을 펼치고 중국 만주에서 생을 마감했다.


여성으로서 당시 개혁적이고 혁신적인 행동으로 지식인의 역할을 해오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몸소 실천해 왔던 강원도 춘천지역 항일 의병 투쟁 애국지사 윤희순 의사의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을 재조명해 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해주 윤 씨' 후손, 윤희순 의사

② 선비 아내, '최초 여성 의병장' 되다

③ 의병장 윤희순, '만주 항일' 이어가다



② 선비 아내, '최초 여성 의병장' 되다


윤희순 의병장 동상

윤희순 의병장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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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순(尹熙順, 1860~1935)은 시집오자마자, 학자인 시아버지 외당 유홍석(畏堂 柳弘錫, 1841~1913)의 영향을 받아 매일 읽는 글이 대부분 일본 세력 관련 내용들이었다. 그래서 윤 의사가 지은 의병 가사도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음을 짐작 케 한다.


그리고 윤 의사 남편 유제원(柳濟遠, 1859~1915)은 의암 유인석(毅菴 柳麟錫, 1842~1915)의 수행비서였다. 유제원은 특히 글씨를 잘 썼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인석은 13도의군 도 총재로 활약한 의병장이며, 유제원의 '삼종백숙부(三從伯叔父)'이기도 하다.


1895년 시아버지 유홍석이 의병을 일으키자, 윤희순은 여성도 역사의 주체로서 항일운동에 나서기로 결심하고 유홍석의 의병 활동을 적극적으로 뒷바라지 했다.


특히 병정들에는 왜병의 앞잡이 노릇을 하지 말도록 당부했고, 여성들에는 의병부대에 가입해 지원에 동참하도록 했다.


의병들에게 음식과 옷을 조달하며 여성들을 의병 활동에 이끌어내는 등 여성으로서 결코 쉽지 않은 한말 구국항일민족 독립운동가 중 최초로 '여성 의병장'이 됐다.


윤희순을 포함한 30여 명의 화서 학파 선비 부녀자들 중심으로 춘천 여성 의병부대를 조직했다. 수집한 군량미로 의병들의 취사 활동과 전투 의복 세탁, 탄약과 무기 제조, 부상병 구호 등에 앞장섰다.


윤희순 노래비 (춘천시 남면 발산리) [구리문화원]

윤희순 노래비 (춘천시 남면 발산리) [구리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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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서 학파는 조선 후기 성리학자 화서 이항로(華西 李恒老, 1868~1972)를 따르는 제자들이다. 조선말 외세의 침략에 맞서 위정척사 활동을 펼쳤던 사람들이다.


강원 춘천지역 전·후기 의병 지원 중에서 특히 왜병 대장에게 포고문을 보내고, <안사람 의병가>와 같은 가사를 지어 부르게 한 의병 사기진작 활동도 눈에 띈다.


의병가(義兵歌)는 <병정노래>, <의병군가1?2>, <병정가>, <안사람 의병노래>, <안사람 의병가 노래>, <애달픈 노래>, <방어장> 등 일반적인 의병가로 춘천의병과 여성의병들이 부르도록 한 의병 가사다.


이 가운데 <안사람 의병가>와 <벙정의 노래>는 2019년에 국가 등록문화재 제750호로 지정됐다.


<안사람 의병가>는 부녀자들이 춘천의병의 항일투쟁활동을 구경만 하지 말고 의병들을 도와주고 참여하자는 권유의 의병가다.


〈 안사람 의병가 〉


아무리 왜놈이 강성한들

우리들도 뭉쳐지면 왜놈잡기 쉬울세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사랑 모를쏘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 없이 소용있나

우리도 의병하러 나가보세

의병대를 도와주세

금수에게 붙잡히면 왜놈시정 받들소냐

우리의병 도와주세

우리나라 성공하면 우리나라 만세로다

우리 안사람 만만세로다

- 윤희순 작사 -


'왜놈 대장 보거라'라는 "우리 임금, 우리 안사람네들 괴롭히면 우리 조선 안사람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줄 아느냐, 우리 안사람도 의병을 할 것이다"라며 부녀 의병이 일어날 것을 경고한 노래다.


< 왜놈대장 보거라 >


놈들 우리나라 욕심나면 그냥 와서 구경이나 하고 가지

우리가 너희 놈들한테 무슨 잘못이 있느냐

우리나라 사람 이용하여 우리나라 인군(임금) 괴롭히며

우리나라를 너희 놈들이 무슨 일로 통치를 한단 말인가

아무리 유순한 백성인들 가만히 보고만 있을 줄 안단 말이냐

절대로 우리 인군(임금) 괴롭히지 말라

만약 너희 놈들이 우리 인군(임금), 우리 아낙네들 괴롭히면

우리조선 안사람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줄 아느냐

우리 안사람도 의병을 한다

- 윤희순 작사 -


이밖에 <애달픈 노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탄식하는 노래가사로 의병을 도와주고 참여하게 하는 노래이고, <방어장>은 우리 지역 청년들에게 의병참여를 권유하고 사기를 북돋우는 애국과 구국정신이 깊이 배어있는 노래가사다.


윤희순 의사 의적비 (춘천시 남면 발산리) [구리문화원]

윤희순 의사 의적비 (춘천시 남면 발산리) [구리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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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순의 의병 가사는 옛 한글체로 직접 지어 불렀고 항일의식을 고취하도록 보급하던 의병가를 기록으로 남겼다는데 역사적 의미로 평가받고 있다.


강대덕 애국지사 윤희순기념사업회 이사는 "그의 가사는 한글로 된 최초의 의병 가사일 뿐 아니라 최초의 여성 의병장으로서 지은 가사라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강원도 춘천의병 초기에 있었던 유일한 의병가로서 왜적에 대해 경고와 규탄, 성토, 회유 등의 함축된 내용도 포함하고 있어 크나큰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1909년 윤 의병장은 일제가 삼남지역 의병을 탄압하기 위해 남한대토벌 정책으로 의병 활동이 어렵게 되자, 일부 의병 세력은 만주와 연해주 등으로 옮겨갔다.




라영철 기자 ktvko258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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