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루트] "리멤버"‥ 파주 장파리 '리비교'
한국전쟁의 역사적 교훈과 아픔 지닌 다리
보수 공사 거쳐 경기서북부대표 관광지로 탈바꿈
[아시아경제 라영철 기자] 경기도 파주 임진강 변 장파리에는 6·25전쟁 초기에 대전 전투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부대원을 구한 조지 D. 리비(George D. Libby) 중사를 기리기 위해 '리비(Libby)' 이름을 붙인 다리가 있다.
'리비교'는 1950년대 미군에 의해 임진강에 건설된 다리 중 유일하게 남은 한국전쟁의 역사적 교훈과 아픔, 지역주민의 삶을 이어주던 다리다.
한국전쟁 중 장마루에 세워진 리비교는 먹고 살기 힘든 시대상을 기억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
'리비교'는 파평면 장파리~ 진동면 용산리를 잇는 교량으로 1973년 임진강 북쪽에 주둔했던 미군이 철수한 이후부터는 우리 국방부가 관리해 왔다.
2016년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아 전면 통제되다가 지금은 파주시가 보수 공사에 들어가 다섯 번째 교각을 건설 중이다.
파주시는 '리비교'를 비롯해 인근 장파리 일대에 '리비교 문화 공원'을 조성해 DMZ 평화의 길과 연계한 경기서북부대표 관광지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계획이다. [편집자 주]
■ 민통선을 잇는 유일한 다리
1951년 7월부터 휴전협정을 시작할 당시, 전선은 정리돼 있었으나 계속된 보급로가 필요했던 미군은 임진강 하류인 파주에서 상류인 연천까지 '자유의 다리'를 포함해 모두 11개 교량을 설치했다.
그러나 교량들이 임진강 홍수에 유실되는 등 사고가 잦자, 미군 제1군단 사령관은 1952년 9월에 적성지역 2곳에 반영구적인 교량을 설치하기로 했다.
'틸교'는 잠수교로 '리비교'는 영구교량으로 건설했다.
미 8군 공병대가 리비교의 설계 및 건설을 위한 연구를, 제 2 건설공병대가 설계를, 그리고 '임진강의 정복자' 로 불린 미 84 건설공병대대가 건설을 맡았다.
교량 건설에는 1952년 10월부터 1953년 7월까지 약 9개월이 걸렸다.
'리비교'는 파평면 장파리~ 진동면 용산리를 잇는 총연장 328m, 폭 11.9m 콘크리트 교량이다.
당시 교량 건설 기술과 완성도는 미국 모든 주의 고속도로 시스템에 도입할 만큼 뛰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파주시 중앙도서관 기록에 따르면, 6·25 전쟁 당시(1951~53년 사이) 임진강에 건설된 다리는 ▲자유의 다리(임진강 철교) ▲기러기(Honker) 다리 ▲저어새(Spoonbill) 다리 ▲X-Ray 다리(리비교) ▲홍머리오리(Widgeon) 다리 ▲쇠오리(Teal) 다리 ▲고방오리(Pintail) 다리 ▲쇠기러기(White Front) 다리 등 8개다.
이중 '리비교'는 2016년 보수 결정에 따른 통행이 금지되기 전 60여 년 동안 파주시 장파리와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는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생명의 다리와도 같았다.
60~70년대 초기에는 하루 유동 인구가 미군과 주민을 포함하면 약 2~3만 명에 이를 정도로 활기에 차 있었다.
'리비교'를 건너 주둔하던 미군을 상대로 음식점, 클럽, 술집, 여관 등 상권이 생겨나면서 호황을 누렸다.
김영민 장파1리 이장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리비교 전방에 미군이 주둔해 있어서 리비교로 미군과 한국군이 많이 다녔다"며 미군 클럽에 대한 어릴 적 추억도 떠올렸다.
그는 "저희 집 아래에도 홀(미군클럽)이 하나 있었는데, 문틈으로 몰래 들여다보면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고, 무대로 나가서 춤추고, 노래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당시 장파리에는 미군 클럽이 여러 개 있었는데 그중 '라스트 찬스(Last chance)'는 미군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클럽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군들이 리비교를 건너 장파리로 들어오면 맨 처음 접하는 클럽이 '라스트 찬스'였다. 그래서 '퍼스트 찬스(First chance)'라고도 불렀다.
또, 부대로 복귀할 때는 외출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번 더 즐기는 곳이어서 역시 '라스트 찬스'라고 했다고 한다.
다소 논란은 있지만, 장파리 일대 미군 클럽에서 무명 시절 가수 조용필을 비롯해 윤복희, 패티 김 등이 출연해 공연했다는 전언도 있다.
지금은 옛 클럽은 대부분 사라지고 '라스트 찬스'만 당시 전성기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근대 문화유산으로 손꼽히는 '라스트 찬스'는 지난 5월 경기도 등록문화재 예비심의를 통과, 오는 10월 경기도 문화재위원회 확정 심의를 거치면 정식으로 도 등록문화재로 등재된다.
한편, '리비교'는 임진강 북쪽에 주둔했던 미 제2사단 23연대가 1973년 철수하기 전까지 이용되다 미군이 철수한 뒤 민통선 지역에서 경작이 허용되면서 민간인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신원을 조회해 출입증을 발급받은 주민만 통행할 수 있으며, 아침에 리비교를 건너가 농사일을 하고 저녁에는 반드시 나와야 한다.
김 이장은 "리비교로부터 비무장지대(DMZ)까지는 약 4~5km 되며, 최북단에서 농사짓는 마을은 대성동"이라며 "예전에는 남북 간 포로 교환도 이뤄졌던 곳이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리비교 통행금지 이후 많은 불편함을 겪는 주민들의 애로도 털어놨다.
김 이장은 "리비교 통행금지 이후 5년간 농사짓던 주민들은 연천과 다른 지역을 통해 먼 거리를 돌아서 다녀야 한다"면서 "시에서 비용 일부를 지원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하루빨리 리비교를 이용할 수 있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비교' 가까이에는 장파 1리를 비롯해 4개 마을이 있으며 장파 1리에는 100여 농가가 있다.
지난해엔 파주중앙도서관에서 시민과 함께 고단한 인생을 살아낸 평범한 시민의 삶을 사진과 이야기로 풀어내고 기록한 '리피교와 장마루 사람들'이라는 책을 펴내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
■ 전우애와 숭고한 희생정신
1950년 7월 20일 대전 전투 당시 자신을 희생해 사단 병력을 철수시키는 데 공헌한 미 제24사단 전투공병대대 소속 조지 리비(George D. Libby) 중사 [파주중앙도서관 제공]
원본보기 아이콘'리비교'는 1953년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맥스웰 테일러 사령관에 의해 봉헌됐다.
‘리비(Libby)’라는 교량명이 결정되기까지 여러 이름이 후보에 오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1953년 1월 1일 리비교 건설 도중 7번 교각 지점에서 폭발사고로 사망한 카투사 김호덕 대위 이름도 포함됐다.
같은 해 4월 16일 임진강에서 배가 뒤집혀 익사 위기에 처한 한국인 노동자를 구하다가 물에 빠져 숨진 미 일병 제임스 오그라디의 이름도 올랐다.
이 두 명의 이름이 후보로 제안됐으나, 미 8군 맥스웰 테일러 사령관은 고민 끝에 '리비' 중사의 이름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미 제24사단 전투공병대대 소속 조지 리비(George D. Libby) 중사는 1950년 7월 20일 대전 전투 당시 옥천으로 향한 철수로가 차단된 상황에서 자신을 희생해 사단 병력을 철수시키는 데 공헌했다.
그는 산악철수가 불가능한 부상병들을 차량에 태워 철수하면서 북한군의 사격을 받아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등 전진이 불가한 상황에 부닥쳤다.
이때 철수하는 포병 M-5 포차를 세워 부상병들을 옮겨 실은 다음, 기관단총으로 도로 주변의 적을 제압하며 철수작전을 이어갔다.
포차 운전병을 자기 몸으로 감싼 뒤 전속력으로 달리게 한 뒤, 길가의 부상병들까지 태워 철수하던 중 많은 총상을 입고 전사했다.
리비 중사는 자신의 생명을 던져 동료를 구해낸 공로로 6·25전쟁 최초로 미국의 최고 무공훈장 'Medal Honor'를 받았다.
전쟁 중 적과 대치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동료를 구하는 데 힘썼던 조지 리비 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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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뜨거운 전우애와 희생정신은 '리비교'를 통해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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