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그래서 도대체 언제 실용화된다는 얘긴데?" "설레발 쳐놓고 예산만 낭비한 거 아냐?"


날마다 수십 개씩 쏟아져 나오는 각종 과학기술 개발 소식에 흔히 붙는 댓글들이다. 해당 기사를 작성하는 입장에서도 궁금하다. ‘세계 최초’라는 말이 보도자료에 흔히 등장한다. 빨리 실용화돼 질병을 치료하거나 인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고, 산업 현장에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키워줄 수 있어 보이는 것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이쯤 되면 한국 과학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닌가"라는 ‘국뽕’이 가득 차게 만드는 발표들도 있다.

그러나 사실 실속이 그렇게 크지는 않다. 산업자원부의 ‘2020 기술이전·사업화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공공연구소 등 공공연구기관들이 매년 신규 개발하는 기술 중 민간 기업에 이전되는 비율은 35.9%에 그친다. 가장 중요한 척도인 ‘기술 이전 효율성’ 즉 투입된 연구개발비 중 기술이전으로 회수된 금액의 비율은 2% 안팎에 불과하다. 100원을 써서 1~2원 건진다. 공공연구기관들이 최근 들어 연구개발비를 많이 늘려 과학기술 실적도 늘어나고 민간 이전도 활발해지고 있지만 아직 ‘가성비’는 좋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조바심을 느끼는 이들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단순히 ‘괴짜’들의 호기심 충족을 위해 세금이 낭비되는 것은 당연히 막아야 한다. 최근 ‘메타물질’을 취재하던 중 실제로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됐지만 이후 사장된 해리포터의 ‘투명망토’ 관련 기술들을 보면서 솔직히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공공연구가 주로 기초·원천 기술 개발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좀 더 성숙도를 높여 상용화되는 기술이 많아지도록 지원하고 있다. 상업적 잠재력이 있는 실험실의 아이디어를 발굴해 시장의 수요에 맞게 실용화하는 연구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20년’을 보내고 최근에는 코로나19 방역 실패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일본을 이제는 이겼다고 환호한다. 정작 기초·원천 기술이 부족해 과학·기술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한 명도 없는 한국의 현실은 아직 ‘사상누각’이다. 일본은 고령화 사회로 젊은 층이 급감하고 경제도 20년 넘게 죽을 쑤고 있지만, 장인 정신으로 쌓아 놓은 기초과학·원천기술로 먹고 살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반도체, 배터리 등 한국이 강점인 산업들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기반이 약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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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기술 강국인 미국을 생각해보자. 8월 ‘이달의 과학기술인’으로 선정된 박훈철 건국대 교수는 2002년 미국 항공우주학회에서 개최한 무인기학회에 참석했다가 전율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당시 미국의 방위고등연구기획국(DARPA)이 현실과 동떨어진 엉뚱한 연구 주제들을 지원하겠다고 하자 일부 교수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에 대한 답이 걸작이었다. DARPA는 "우리는 연구비를 지원하는 100개 과제 중 하나만 성공해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회의장에 순간 적막이 흘렀다고 한다. 박 교수는 "나도 뭔가 새로운 연구를 해보자"고 결심했고, 15년간 남들이 큰 관심을 갖지 않는 곤충형 비행기술 연구에 집중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이처럼 미국은 파괴적 혁신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실패해도 문책하지 않고 다양한 연구 방법을 장려하며, 심지어 연구 도중 목표를 변경하기도 하는 ‘도전적 연구개발(R&D)’ 시스템을 갖췄다. 결국 이 같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소련과의 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과학’이 기술이 되는 데에는 빨라도 30년, 늦으면 50년이 걸린다. 최대한 낭비나 도덕적 해이를 막되, 천재들의 과감한 도전을 적극 장려하는 유연한 과학기술 정책이 필요하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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