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반말, 아내는 존댓말? 21세기 맞냐"..구시대적 정부 홍보물에 시민들 '분노'
정부·지자체 홍보물에 성차별적 요소가 포함되는 사례 만연
인권위 "2개월 간 모니터링 결과 760건의 성차별 표현 사례 발견"
시민들, 구시대적인 정부 홍보물에 분노
전문가 "기존의 성 편견 고착화..각 기관 차원에서 모니터링 강화해야"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정부·지자체 홍보물 모니터링 결과 여성에게만 치마, 하이힐, 신체 굴곡 등을 표현해 성별 고정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등의 성차별적 사례가 발견됐다. 사진=국가인권위원회 제공.
[아시아경제 박현주 기자]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이건 아닌 것 같네요!"
올 초 서울시 임신출산정보센터가 가사·육아를 전적으로 임신부에게 책임 지우는 내용을 안내해 구시대적이란 비판을 받았던 데 이어 여전히 정부·지자체 홍보물의 성차별·혐오 표현 실태가 만연한 것으로 나타나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지난 3월부터 2개월 간 정부·지자체 홍보물의 혐오표현 실태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담은 표현이나 이미지가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 가운데 성차별 표현 사례가 총 760건으로 가장 많았다.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일부 정부·지자체는 성별과 관련없는 정책 홍보물에 성별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담은 표현 및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남편은 반말을 사용하는 반면 아내는 깍듯한 존댓말을 사용하거나 여성을 비서·가정주부·서비스업 종사자 등 돌봄 주체로만 그려내는 등이다. 여성 캐릭터에게만 속눈썹, 치마, 하이힐, 신체 굴곡 등을 그려내 성별 고정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시민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대 후반 직장인 A씨(여)는 "요즘 어떤 가정에서 남편은 반말을 쓰며 하대하고 아내는 존댓말을 쓰냐. 구시대적인 정부 홍보물을 보니 지금이 21세기, 2021년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40대 B씨(남)도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으니 정부에서 홍보물을 배포할 때 검수를 제대로 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간 정부·지자체의 홍보물에 성차별적 요소가 포함되는 사례는 지속적으로 반복돼왔다. 지난 1월 서울시가 운영하는 임신출산정보센터에서는 임신 말기 행동 요령으로 '요리에 서투른 남편을 위해 밑반찬 챙기기', '입원 날짜에 맞춰 남편과 아이들 속옷 정리해두기' 등을 안내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이외에도 '청소나 설거지 같은 집안일로 체중 관리를 하라' 등의 내용을 안내해 구설수에 올랐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책임자 징계 및 공개 사과를 촉구하는 국민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 1월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서울시임신출산정보센터 논란글 담당작성자와 책임자 징계 및 공개 사과를 요구합니다'라는 청원글의 작성자는 "서울시는 여성을 애 낳는 공공재로 생각하느냐"며 "임신 35주차 여성의 출산 전 점검 사항이 고작 남편 속옷 챙기고 밥 차리는 거라니. 어떤 직원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해당 청원은 2만6068명의 동의를 얻었다.
지난해 6월 국토교통부 역시 '2019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신혼부부 가구'를 '혼인한 지 7년 이하이면서 여성 배우자의 연령이 만 49세 이하인 가구'로 정의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하루 만에 삭제했다. 당시 여성의 나이에 제한을 둔 것은 가임기 여성만을 신혼부부 구성원으로 보겠다는 의도 아니냐는 강력한 비판이 제기됐다. 만 49세 이상 여성이 포함된 신혼부부 가구가 국토교통부의 신혼부부 주거지원 사업 혜택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지자체의 홍보물 발간 및 배포 시스템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홍보물은 국가 정책의 소통 창구로서 홍보물이 담고 있는 내용, 단어, 표현 등에 따라 시민의 인식, 태도, 행동 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김은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미래연구본부 연구위원은 "정부·지자체 홍보물은 대중을 대상으로 배포된다는 점에서 성차별적인 요소가 걸러지지 않을 시 많은 사람들이 이에 무분별하게 노출될 수 있다. 이는 기존의 성 역할 고정관념 및 편견을 강화할 수 있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성차별적 요소를 배제하기 위해 지난 2016년부터 정부홍보사업에 대한 점검을 위한 성별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이는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대국민 홍보를 위해 제작하는 온·오프라인 홍보물을 대상으로 △성역할 고정관념 및 편견 △성차별적 표현·비하·외모지상주의 △폭력에 대한 왜곡된 시각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편견 △성별 대표성 불균형 등을 점검한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의 홍보물 관리 체계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권위는 "정부 홍보물의 관리 체계에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담은 표현 등이 충분히 걸러지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홍보물 관련 규정 및 점검 절차·체계 보완, 공무원의 인권 감수성 증진을 위한 교육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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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김은경 연구위원은 각 기관 차원의 홍보물 모니터링 강화를 제안했다. 김 연구위원은 "지금도 정부 차원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전국 기관의 수가 많다 보니 인력도 부족하고 물리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다"며 "각 기관 차원에서 홍보물을 모니터링하고 전문가 자문을 구해 홍보물을 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동영상의 경우 제작 완료된 상태에서 평가가 들어가기 때문에 시간·비용 등의 문제로 수정이 어렵다. 시나리오 제작 등 홍보물 제작 초기에 전문가를 통한 점검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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