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도 애매모호, 알아서 지키라는건지…"
시행령 불명확한 조항에 혼선
"안전보건관리 '적정한' 예산
법 지켜야하는 입장 답답"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황윤주 기자] "적정예산, 적정인력이 도대체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법이 모호해서 시행령에 구체적인 내용이 담길 줄 알았는데 기업이 ‘알아서 잘’ 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식이네요."
9일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본 한 경제단체 관계자의 얘기다. 앞서 지난 1월 법 조문이 공개된 후 일선 산업 현장이나 법조계에선 재해나 책임의 범위, 경영책임자 규정 등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며 시행령에 세부 내용이 담길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정작 시행령에서도 해석이 불명확한 조항이 상당해 산업계 혼선은 쉽게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경영계에선 그간 논의 과정에서 수차례 요구했던 내용이 반영되지 않은 점을 규탄하면서 공동건의서를 빠른 시간 내에 정부부처에 제출하기로 했다.
대표적인 게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위한 예산을 ‘적정한’ 수준에서 정하도록 한 점이다. 해당 법 조항에선 시행령에 위임하도록 돼있다. 공중이용시설이나 대중교통에서 일어날 수 있는 중대시민재해의 경우 필요한 인력도 적정 수준에서 배치하도록만 했다. 정부는 "세부 가이드라인으로 보완할 예정"이라고 했으나, 법에서 시행령에 위임한 걸 다시 정부 입맛대로 손질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일호 대한상공회의소 고용노동정책팀장은 "법에 시행령 위임규정이 없다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지 않았다고 하는데, 법을 지켜야 하는 기업 입장에선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책임주체도 '경영책임자 등'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 있어
재계는 책임 주체도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법령에 명시된 ‘경영책임자 등’은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징역과 벌금을 병과할 수 있는 데다 징벌적 손해배상 등 처벌수위가 높은 만큼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해둬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얘기다.
전승태 한국경영자총협회 산업안전팀장은 "사업 대표 ‘또는’ 안전·보건 담당자로 정의하니 법인 대표와 기업 안전보건조직위원장이 모두 처벌받을 수 있고, 해석에 따라 안전·보건 담당자가 경영 책임자가 될 수 없다"며 "기업들이 안전·보건 담당자를 이사로 선임해 권한을 확대할 필요가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 범죄 요건에서 안전보건확보 의무를 규정한 부분도 논란이다. 앞으로 기업은 안전보건 관계법령상 의무 이행에 필요한 관리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러나 시행령은 중대재해법에 적용받는 안전보건 관계법령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는 "사업자가 알아서 안전보건관계법령이 무엇인지 판단하라는 의미"라며 "정부가 결국 자의적 판단으로 법을 적용하겠다는 의미인데, 경영 책임자를 1년 이상 형사 처벌하는 법을 해석 여지가 있도록 만드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경영계에서 그간 요구한 대로 뇌심혈관계 등 만성질환은 직업성 발병에서 제외했으나 중증도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일선 현장의 혼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6개월 이상 치료 등 일정한 기준을 마련해두지 않아 가벼운 질병까지 중대재해로 간주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열사병 등 일부 질병의 경우 중대재해로 보는 게 적정한지 의아해하는 시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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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유죄 여부와 관계없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경영책임자가 20시간 교육을 받게 한 점이나 경영책임자가 관리의무를 다했음에도 개인 부주의로 생긴 재해에 대해 면책규정이 없다는 점도 손봐야 한다고 경영계에선 주장했다.
황윤주 기자 h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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