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층 노동자 평균 시급 8546원…최저시급보다 낮아
일하는 노인 약 74%, 노동 이유는 "생계비 마련"
장시간 일해도 빈곤 탈출 힘들어 OECD…노인 빈곤 1위
전문가 "생산성 높여 양질의 일자리 창출해야"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70대 간병인 A 씨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돌보고 있다.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를 돌봐야 하는 업무 특성상, A 씨는 환자와 숙식을 함께 하며 온종일 대기해야 하지만 월급은 턱없이 낮다. A 씨는 "밤낮없이 일하는 데도 제 월급을 시급으로 환산하면 시간당 5000원에 불과하다"며 "이 나이에 일하는 것도 힘들지만, 내 노동이 최저임금만 한 가치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게 훨씬 서럽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65세 이상 노년 노동자들의 노동 참여율이 갈수록 늘고 있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최저임금도 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쇠한 몸을 이끌고 장시간 노동하는 고령층 노동자들이 빈곤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문가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고령층 노동자의 직무능력을 높여,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노년알바노조 준비위원회(위원회), 평등노동자회 등이 1일 발표한 '노년 노동자 최저임금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초연금을 받는 전국 65세 이상 노동자 10명 중 4명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시급을 받고 일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에 참여한 이들의 평균 연령은 69.3세로, 이들의 평균 시급은 8546원으로 올해 최저시급(8720원)보다 낮았다.
경비, 돌봄 등 분야에서 종사하는 노인 노동자들은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은 시급을 받으며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위원회 측은 고용주가 최저임금 위반을 피하려 의도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였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경비노동자의 경우, 대부분 하루 12시간 맞교대 방식으로 근무하지만, 고용주는 실제 근무시간의 3분의 1가량인 4시간을 휴식시간으로 산정해 봉급을 지급한다는 설명이다. 경비 노동자들의 실제 근무시간으로 나눈 평균 시급은 6346원으로, 현행 법정 최저시급보다 현저히 낮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근로 수입이 있는 노령 노동자들도 빈곤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에서는 65세 이상 노인들의 노동 참여가 활성화됐음에도,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0 노인 실태조사'를 보면, 지난해 기준 만 60세 이상 노인 중 일자리가 있다고 응답한 노인은 전체 가운데 36.9%로, 지난 2014년(28.9%)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노인층이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이유에 대해 "생계비 마련"이라고 답한 비율은 73.9%에 달했다. 연금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어 근로를 시작한 고령층이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고령층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늘어나는데도, 국내 노인 빈곤율은 OECD 최악 수준이다. 지난 2018년 기준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3.4%로 OECD 국가 1위였다. OECD 평균(14.8%) 대비 약 3배에 달했다.
시민들은 힘들게 일하는 고령층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것은 불공평한 처사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20대 직장인 B 씨는 "매일 새벽 출근길 열차를 타면 아침 일찍 일 나가시는 어르신들로 가득하다"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늙어서까지 이렇게 부지런하게 일하며 사는데 이분들에게 최저시급조차 쥐여주지 못한다는 게 분통스럽다"라고 토로했다.
50대 주부 C 씨는 "정년퇴직한 뒤 마땅한 돈벌이가 없으면 누구나 빈곤을 겪게 되지 않나. 노인 빈곤이 결코 우리와 무관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연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으면 노인 일자리라도 제대로 만들어 줘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는 정부 지원을 통해 노인 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여 양질의 고령층 일자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한국노동경제학회' 측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기업들은 고령층 노동력을 생산성이 떨어지는 집단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렇게 되면 노인 일자리의 양적 확대가 달성되더라도 질적 개선은 이뤄지지 않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독일 등 선진국 노인일자리 정책을 살펴보면 고령층의 교육 및 상담 프로그램, 구인·구직 매칭 체계를 동시에 진행한다. 노인의 근로 능력을 개발해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직무훈련으로 고령층의 생산성이 높아지면,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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