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해법은 막연히 서민들을 도와주는 연민의 정 아니야
소비로 연결되는 유효수요 늘려야

기재부 선별지원 고집하지만…효과 계산 근거 제시 못해
재난지원금 어중간하게 쓰면 내성 생겨
재정을 축 내는 정책은 돈을 효과적으로 쓰지 못하는 정책

서준식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서준식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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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활동이 침체되는 상태를 두고 '불황'이라고 하며 갑작스럽게 큰 충격의 불황을 '공황'이라고 한다. 필자의 경우 불황이란 '생산자들이 만든 상품들을 소비자들이 충분히 소비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정의한다. 석유, 전기제품, 자동차, 라디오, 화학비료 등으로 대표되는 2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19세기 말경부터 인류 사회는 대량생산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때부터 자본주의 시스템은 대량 생산의 부작용으로 각종 위기를 맞게 되었다.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독일은 과거 대량생산된 상품들을 소비해줄 수 있는 식민지를 거의 보유하지 못했다. 1900년대 초 엄청난 속도의 산업화를 구가했지만 생산된 상품의 수요처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식민지와 영토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다 독일의 빌헬름 2세는 1차 세계대전의 전범이 되고 만다. 이후 환율전쟁이나 보호무역문제 등 자본주의 국가들간에 끊임없이 야기되는 갈등들이 벌어졌다. 따져보면 이 사건들도 자국에서 대량생산되는 상품들을 어떻게 소비시키느냐와 연관돼 있다.

세계 대공황이나 글로벌 금융 위기,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 등과 같은 공황의 가장 큰 이유도 대량 생산되는 상품들을 소화시켜 줄 소비자들의 소득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신상품들은 쏟아지고 부동산 가격은 치솟아 겉보기 경제는 화려해 보였지만 실상은 지불해야 할 상품이나 부동산의 가격에 비해 노동자들의 소득이 턱없이 모자라 가계부채가 급증했다. 그런 상황마다 위기는 반복됐다.


위기 때마다 정부가 유효수요(소비로 연결되는 돈)를 서민들에게 지원해 생산자의 상품을 소비해주게 하는 ‘케인스주의’ 정책은 자본주의의 구원자가 되어주었다. 본질을 잘못 이해하여 실행한 일본의 경우와 달리 미국은 일단 위기가 발생하면 전방위적인 케인스주의 정책을 과감히 실행하여 큰 어려움에서 벗어났다. 그때마다 루스벨트나 오바마와 같은 모범 케인스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은 것은 미국으로선 천만다행이었다 판단된다.

불황이 발생했을 때 해법의 본질은 막연히 서민들을 도와주는 연민의 정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생산된 상품들이 소화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엔진이 고장났고, 이를 재가동 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본질이라는 걸 이해했다. 위기 시 정부가 서민들에게 빵 값을 제공하는 목적은 당장 배고플 때 빵으로 허기를 달래라는 것이 아니다. 빵을 충분히 소비해서 빵집이 다시 살아나서 종업원도 더 고용하고, 우유도 더불어 더 소비되어 목장까지 다시 살아나는 식의 전방위적인 경제회복에 있다는 것이 케인스주의의 본질이다.


코로나 위기극복을 위한 재난지원금 지급 방법이 선별지원으로 결정됐다. 여러 보완책들을 함께 내놓은 것을 보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보편지원을 주장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번 결정의 근거가 실망스럽다. 작년부터 보편지원(1차)과 선별지원(2~4차)이 모두 실행됐기에 각각의 효과들을 정부가 계산했어야 했다. 놀랍게도 선별지원을 고집하는 기획재정부가 그 주장을 뒷받침할 계산 근거를 제시 못한 채 ‘재정을 위해 이게 나을 것’이라며 막연하게 전망만 얘기하고 있다.


물론 소외계층 지원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복지정책은 내 몸에 부족한 성분을 채우는 ‘비타민’ 복용과 같은 것이다.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만들어 인내심을 가지고 실행하는 정책들이다. 반면 기획재정부가 주관하는 재난지원금은 ‘항생제’의 성격을 지녀야 한다. 소비 절벽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이 위협받을 때 소비자들에게 유효수요라는 약을 주어 생산자들을 살리라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어떻게 이번 ‘항생제’를 효과 있게 잘 처방해야 할지 집중해야 한다. 어중간하게 쓰면 내성만 생기므로 신속하게 작용하는 강력한 처방이 필요하다. 재정을 축 내는 정책이란 돈을 많이 쓰는 정책이 아니라 돈을 효과적으로 쓰지 못하는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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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식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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