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공수처·국수본, 예견된 수사권 혼란
[아시아경제 최석진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 수사를 놓고 정부와 여당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담은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의 시행에 따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를 주축으로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합수본)를 만들어놓고도 여권 내부에서 “검찰이 수사에 참여해야 한다”, “특별검사를 도입해야 한다”는 등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검경의 유기적 협력을 강조하고 박범계 법무부장관이 신도시를 관할하는 수원지검 안산지청을 방문해 경찰 수사에 협조를 구하며 격려했지만, 초동 수사 단계에서 정작 검찰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영장이나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하는 일 정도다.
법리 검토 등 지원을 위한 정부합동조사단 파견 검사를 애초 1명에서 2명으로 늘렸지만 이번 사건의 방대한 수사 범위·대상을 고려할 때 ‘검경이 협력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전시행정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박 장관이 언급한 대로 이번 사건 수사에서 4급 이상 공직자나 공공기관 임원 등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공직자의 연루 혐의가 드러날 경우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여지는 있지만, 전체 수사를 경찰이 맡아하고 있는 상황에서 몇몇 피의자만 분리해 검찰이 수사한다는 것도 수사의 연속성이나 효율성 면에서 문제가 있는 게 사실이다.
사건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되면 검찰이 보완수사를 할 수 있도록 법은 규정하고 있지만, 경기남부·경기북부·인천 등 3개 시도경찰청 외에 15개 시도경찰청 소속 경찰관 등 700여명 규모의 경찰이 수개월에 걸쳐 수사한 사건을 검사가 기록만 검토해 보완할 부분을 짚어내고 수사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은 얘기다. 재판에 들어가 공소유지를 해야 할 검사 역시 수사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못한 채 산더미 같은 기록을 읽고 법정에 들어가 유죄를 입증하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과연 경찰이 의혹의 실체를 낱낱이 규명해줄 수 있을지, 수사 과정에서 여권의 실세나 친정부 인사의 연루 정황이 드러났을 때 좌고우면하지 않고 수사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국민도 많은 게 사실이다.
‘LH 사건’이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의 문제라면,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검찰, 경찰 등 다른 수사기관간의 수사 권한 문제가 불거진 사건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은 허위작성한 공문서를 이용해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에 대한 긴급출국금지 승인을 요청한 이규원 검사와 수원지검 안양지청의 이 검사에 대한 수사 개시를 막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관련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했지만, 공수처는 12일 사건을 다시 검찰로 재이첩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검찰로의 재이첩을 결정하기 전까지 ▲공수처 직접 수사 ▲수원지검 재이첩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 이첩 등 3가지 가능성이 모두 열려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당이 법 개정을 통해 기껏 검찰과 경찰, 공수처의 수사 대상을 나눠 규정해놨는데 같은 사건을 이 세 기관이 모두 수사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건 국민 입장에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이 지검장은 검찰의 소환통보에 3차례나 불응하며 공개적으로 공수처에서 수사 받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수사처 외의 다른 수사기관이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그 수사기관의 장은 사건을 수사처에 이첩하여야 한다’는 공수처법 제25조 2항을 근거로 들었지만, 공수처 검사를 선발하기 위한 인사위원회도 안 열려 수사할 검사가 없는 상황인 걸 알면서도 이 지검장이 그토록 강력하게 공수처의 수사 관할을 고집한 건 다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지금까지 자신을 수사해온 수원지검보다는 여당 주도로 임명된 김진욱 공수처장이 지휘하는 공수처에서 수사 받는 게 여러 면에서 유리할 거라 생각하는 게 아닐까하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된다.
심지어 이 지검장은 ‘처장은 피의자, 피해자, 사건의 내용과 규모 등에 비추어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범죄등을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해당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첩할 수 있다’고 규정한 공수처법 제24조 3항과 제25조 2항의 관계를 일반규정과 특별규정이라는 해석까지 내놓으며 “검찰에서 사건을 이첩받은 공수처가 다시 검찰로 사건을 재이첩할 수는 없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그런데 김 처장이 사건을 검찰로 재이첩한 걸 보면 이 지검장의 공수처법 해석이 틀렸다는 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수사를 책임지는 서울중앙지검장과 공수처장이 검찰과 공수처간 관할을 정한 중요한 법조항을 놓고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 상황은 제도 시행 초기라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심히 우려가 되는 건 사실이다.
한편 박 장관이 공수처가 사건을 검찰로 재이첩했다는 보고를 받고 격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모르긴 몰라도 박 장관 역시 청와대와 여당에 부담이 되는 이번 수사를 검찰이 하는 것보다는 공수처가 하는 게 여러모로 마음이 놓였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김 처장이 사건의 검찰 재이첩을 결정한 날 박 장관은 기존 수사팀 팀장 외 4명의 검사 중 2명의 파견 연장 승인을 거부했다.
법무부는 “2개월에 걸쳐 구속영장을 청구할 정도로 수사가 상당 부분 진행된 상황에서, 수원지검 내 인력 충원으로도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지만 영장 재청구를 검토해야 될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수사를 맡고 있는 임세진 수원지검 평택지청 형사2부장과 이번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이규원 검사에 대한 수사를 담당해온 김경목 부산지검 검사를 동시에 수사팀에서 빼낸 건 누가 봐도 명백한 수사 방해 행위다.
‘적폐 청산’을 내건 국정농단 사건 수사나 사법농단 사건 수사 당시 수사팀에 파견됐던 검사들이 수개월에 걸쳐 파견근무를 하고, 수사가 종료된 이후에도 공소유지까지 직관했었다는 걸 되돌아보면 ‘평택지청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핑계 삼은 법무부의 해명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박 장관 본인이 스스로 밝혔듯이 여당 정치인 출신의 장관이고 정무직 공무원이지만 법무부장관이라는 직책은 정치권의 외풍으로부터 검찰의 방패막이 역할을 해줘야 되는 자리다.
그런 장관이 인사 권한을 남용해 정부에 부담되는 수사를 노골적으로 막아서는 모습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이 지검장이고 차 본부장이고 공익신고와 형사고발을 통해 피의자 신분이 된 이상 절차에 따른 수사를 받도록 하는 것이 법무부장관의 역할이다.
잠깐 주제에서 벗어나 얘기를 하면 여당을 지지하는 국민 중에는 김 전 차관에 대한 불법적인 출국금지를 수사하는 검찰을 오히려 비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김 전 차관이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해외로 도피하는 걸 그냥 두는 게 오히려 검사나 출입국 공무원의 직무유기 아니냐’, ‘그걸 막기 위해 다소 불법을 동원했다고 이렇게 수사하는 게 맞느냐’, ‘애초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임을 모르는 척한 검찰이 원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충분히 공감한다. 김 전 차관에 대한 애초 검찰 수사에는 문제가 있었고, 김 전 차관의 해외 도피는 막아야 했다. 하지만 그런 김 전 차관이라도 ‘거주이전의 자유’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법이 정한 절차를 지켜야 했다.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불법을 그냥 넘어가면 언젠가는 내가 혹은 내 가족이 그 같은 불법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내 부모를 죽이려고 칼을 들고 달려드는 살인범을 살인을 저지르려는 순간 현장에서 제재하면 설사 그 범인을 죽이더라도 정당방위로 인정돼 법적으로 위법하지 않은 행위로 평가된다.
하지만 내 부모를 실제 살해한 범인이라도 그 범인이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가 죽이면 살인죄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그게 우리 형법을 만든 입법자들의 결단이고, 결국은 우리 국민들의 선택이다.
아무리 정당한 목적을 위해서라 해도 절차에 불법이 있으면 그 불법이 처벌 대상이 되는 것, 그게 법치주의를 지켜가기 위해 만든 우리의 약속이고 규범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3년여 전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청와대에서 직접 준비해온 도표를 올려놓고 ‘권력기관 구조개혁 안’에 대한 브리핑을 진행했다.
공수처와 국수본의 신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 기능의 경찰 이관 등 지금 현실이 된 수사개혁 방안 대부분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구상이 그대로 실현된 결과물이다. 수사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학자 출신 조 전 장관이 책상에서 만들어낸 수사권 조정, 수사구조 개혁안이 수사 현장의 실상을 담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직은 제도 시행 초기 단계라 어느 정도의 혼란은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검찰이 수사하다 검사의 고위공직자 범죄가 발견되면 어느 단계에서 공수처로 이첩해야 할지, 사건기록은 어느 범위까지 넘겨야 될지 이런 문제들은 차차 정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여러 직급의 공무원들이 엮여있는 사건 수사를 법이 정한대로 형식적으로 공수처와 검찰, 경찰이 나눠서 맡는 게 맞는 건지, 기소 여부를 결정하고 법정에서 유죄를 입증해야 할 검찰이 수사에 관여하지 못하는 게 맞는 건지, 인권 옹호를 사명으로 하는 준사법기관인 검사가 수사에서 배제되는 게 과연 국민들에게 이로운 일인지 등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새로 수사 권한을 갖게 된 공수처나 국수본 등이 권력의 입맛에 맞는 수사를 위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2019년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이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관한 질문을 받고 갑자기 양복 상의를 벗어 흔들며 “뭐가 흔들립니까. 옷이 흔들립니다. 흔드는 건 어딥니까?”라고 했던 말을 되씹어볼 필요가 있다.
검찰을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삼고자 했던 건 늘 정치권이었다. 그토록 검찰개혁을 강조했던 문재인 정부에서도 친정부성향으로 분류되는 검사들이 요직을 나눠 맡는 ‘회전문 인사’가 반복되는 건 그 같은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당 의원들이, 이 지검장이, 박 장관이 ‘김 전 차관 관련 사건의 수사를 공수처가 해야 된다’고 한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아직 제대로 수사 시작도 못 해본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그 제도를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2018년 조 전 장관은 ‘권력기관 구조개혁 안’을 공개하며 “권력기관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했었다면 반헌법적 국정농단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악순환을 끊겠다”고 강조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제도는 새로 바뀌었지만 과연 세상은 달라졌는가? 여전히 반헌법적인 수사농단을 하고 있는 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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