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100년의 편견에 소비가 던지는 질문
신종원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장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20년대의 미국은 세계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풍요의 시대’를 열고 있었다. 거리에는 자동차가 붐비기 시작했고, 중산층들의 ‘실용적 사치품’으로 팔리기 시작한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TV, 스테레오 등은 필수소비재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100년전 미국의 고도소비사회는 급속히 성장한 대량생산체계가 이끌었다. 조립라인에 의한 자동차 양산체제를 구현한 1913년의 포드자동차 이후, 확대된 대량생산체계는 큰 시장이 필요했고 소비를 부추기는 적극적인 소비정책이 이어졌다. 대량생산체제 유지와 쏟아져 나오는 제품의 판로확대를 위해, ‘제품의 수명은 짧아져야 한다’ 는 ‘계획된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는 많은 기업의 생산 마케팅 정책으로 정착됐다.
당시 떠오르는 소비에트연방(소련)과의 체제경쟁과 맞물려, 정부도 노동자들이 소비에 몰두하도록 하는 것이 투쟁의식도 약화시키고 시장확대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정부 차원에서 새 것을 사도록 유도하기위해 시장에 나온 지 얼마되지도 않은 상품들을 구식으로 만들어버리는 ‘계획된 진부화’를 지원한 이유였다.
한세기 전부터 소비자는 시장 혹은 기업이 의도한대로 쉽게 조작되며 단순하며 판단력이 없는 수동적인 존재라는 인식, 개인적 소비에 몰두하면서 공동체적 연대의식이 박약해진 존재라는 인식이 자리했다. 소비자를 ‘무의식적 비조직적인 개인이며 칭찬과 아첨에 넘어가는 얼간이’라고 지칭한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를 비롯, 지난 한세기 내내 소비자들은 쉽게 속고 조종되는 존재이며 동시에 사회의 모순이나 문제들은 외면하고 사회변화를 위한 연대와 행동은 불가능하다는 부정적 인식이 팽배했다. 그 중 1922년 미국 최초의 제품비교 책자가 출판되면서 소비자들에게 의심하는 태도를 요구하면서 소비자운동이 시작된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꼭 100년이 흐른 지금, 시장에서 소비자는 여전히 단순해 잘 속고 정보가 부족하고 수동적 존재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계획된 진부화도 여전하다. 비싸야 잘 팔린다고 가격 올리기 경쟁하는 수입명품 회사들, 소비자 피해가 다수 발생해도 "1인당 몇만원 짜리 가지고 소송하겠어?" 라고 생각하는 행태를 보면 100년된 편견은 참 바뀌지 않는다. 시장 뿐 아니라 정치, 언론, 종교 등 사회 곳곳에 이런 식의 시민 소비자 이해가 만연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대유행) 상황에 정치와 정책이 얼마나 기민하고 세심하게 시민의 삶을 보살피고 또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 지 시민 소비자들이 뭘 알겠나, 저널리즘의 기본에 미치지 못하는 기사를 쏟아내도 시민 독자들은 쓰는 대로 받아들이고 따라오지 않겠나 생각하는 편견에 이어져 있다.
무지하고 약하다는 편견에도, 이미 소비자들 중 홍수같이 넘실대는 정보의 바다 위를 자유자재로 나아가는 숙련된 항해사들이 많다. 자기만족적이며 이기적이라는 편견이 여전해도, 재난지원금의 사용이 힘겨워하는 자영업자들에게 힘을 주고 나아가 사회경제의 흐름에 기여한다는 것을 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업종의 폐업과 실직의 고통이 극심한 상황, 아이들의 건강한 등교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사회공동체를 위한 행동에 나서는 시민 소비자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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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이미 균형된 정보력과 판단력, 공동체의 DNA를 가진 지식정보사회, 연결과 공유의 시대, 초연결사회의 주인공이다. 이제 국가와 사회, 기업에 묻는다. "아직도 소비자 그렇에 우습게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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