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화가 안영일씨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원로화가 안영일씨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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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원로화가 안영일씨가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엔젤레스(LA)에서 타계했다. 향년 86세.


고인은 1934년 개성에서 서양화가 안승각(1908~1995)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를 따라 도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1945년 10세 때 귀국했다. 아버지의 작업실에 있는 각종 미술책을 접하며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렸고, 타고난 재능으로 '천재 소년화가'라 불렸다. 1949년 중학생으로 제1회 국전에 입선했다. 1953년 고교생으로 제2회 국전에서 특선을 차지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선으로 강등됐다.

고인은 1957년 서울대학교 회화과 재학 중 주한 미 대사관에서 개최한 공모전에 뽑혀 뉴욕 월드 하우스(World House) 갤러리의 초대전에 참여했다. 1958년 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예고와 사대부고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으나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화단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1959년 미국 시카고의 헐 하우스(Hull House) 갤러리, 1962년 핀란드 헬싱키의 USIS 갤러리 등 해외 갤러리에서 잇따라 개인전을 개최했다.


고인은 1966년 더 큰 무대를 꿈꾸며 뉴욕으로 이주했다. 몇 개월 뒤 LA로 거주지를 옮겨 정착했고, LA에서 여생을 보냈다. 캘리포니아 해변 풍경과 특유의 정취가 담긴 서정적인 반추상 계열의 작품을 발표하며 현지에서 전도유망한 화가로 주목받았다. 1967년 재커리 월러(Zachary Waller)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었으나 1970년 컬렉터와 갤러리 사이에 소송이 벌어지는 바람에 10여 년에 걸쳐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했다. 이혼, 경제적 어려움, 우울증을 겪던 그는 1980년대 '물' 연작을 발표하며 재기했다. 이후 그는 '물의 화가'로 통했다.

안영일 'Water ALSV 16', 2016, 캔버스에 유채, 183x152㎝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안영일 'Water ALSV 16', 2016, 캔버스에 유채, 183x152㎝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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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1983년 시작한 '물(Water)' 연작을 통해 빛, 물 그리고 안개가 바다와 교감하는 무수한 방법을 탐구했다. '물' 연작은 바다에서 작은 어선을 타다 길을 잃은 경험에서 출발했다. 자신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에 휩싸였다가 갑자기 걷히면서 햇빛이 쏟아져 수면이 형형색색으로 빛났고, 이때의 잊히지 않는 인상을 시각 언어로 구체화했다. '물' 연작은 멀리서 보면 하나의 색으로 덮인 단조로운 화면 같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사각의 작은 색 점이 모자이크 패턴을 이루며 반짝이고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작가는 물감을 팔레트 나이프로 화면에 옮겨 채움으로써 물결에 반사된 빛의 일렁이는 움직임을 형상화했다. 생전에 그는 바다를 자신의 일부라 말했다. "바다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으로 살아 숨 쉬고 있었고 파도는 파도대로 매 순간 오묘한 빛의 율동으로 출렁이고 있었는데 단 한 번도 같은 빛깔과 몸짓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한없이 겸허해져서 떨리는 마음으로 순간순간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바다의 신비로운 모습을 가슴속 깊이 새겨 넣었습니다. 그날부터 바다는 내 속에 살고 있고, 나는 바다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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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2014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몸이 불편했지만 붓을 놓지 않았다. 2017년 고인의 회화 세계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한국과 미국에서 활발했다. 2월부터 10월까지 미국 서부 지역 내 최대 규모 미술관인 LA카운티미술관에서 재미 한국작가로는 처음으로 개인전 'Unexpected Light: Works by Young Il Ahn'을 개최해 대형 '물' 연작 10여 점을 선보였다. 3월에는 현대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고 내한했다. 그해 11월 미국 롱비치미술관은 2015년에 이어 회고전 'Young-Il Ahn: When Sky Meets Water'를 열었다. 2018년 시카고의 카비 굽타(Kavi Gupta) 갤러리에서 고인의 생전 마지막 개인전이 개최됐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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