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 낯선 공간 고독한 뒷모습…코로나 시대 우리의 초상
페이스 갤러리, 팀 아이텔 개인전 'Untitled' 내년 1월16일까지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독일 작가 팀 아이텔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두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그림 속 인물들은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또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이는 바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스스로에게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아이텔은 현대인들의 소외와 고독한 내면을 표현하는 작가로 통한다.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서울지점이 내년 1월16일까지 'Untitled (Interior)'라는 제목으로 아이텔 개인전을 연다. 아이텔은 2011년 학고재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개인전이었다. 2017년 학고재에서 다시 개인전을 했다.
올해는 한국에서 아이텔 개인전이 두 차례 열렸다. 페이스갤러리에 앞서 대구미술관이 지난 7월7일~10월18일 '팀 아이텔_무제(2001-2020)'라는 제목으로 그의 개인전을 열었다.
"고독은 사회적 교류의 단절
첫번째 의미는 고통이지만
스스로 돌아보는 깨달음의 계기
요즘같은 코로나 상황에선
모두를 위해 더 필요한 것"
이번 페이스갤러리 전시에서는 아이텔이 올해 프랑스 파리에서 그린 신작 10여점을 선보인다. 아이텔은 낯선 공간에 있는 인물의 뒷모습을 주로 그린다. 정면을 바라보는 인물들은 얼굴 윤곽만 뚜렷할 뿐 눈, 코, 입이 흐릿하다. 그래서 멀리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이텔은 그림에서 모호함을 추구한다. 모호하게 처리된 인물은 뭔가 잃어버린 듯 허전한 느낌을 준다. 배경도 인물처럼 세밀하지 않고 흐릿해 쓸쓸함을 더한다.
아이텔은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고독에 두 가지 의미를 부여했다. "첫 번째는 고통이다. 지금처럼 사회적 교류가 단절돼 느끼는 고독은 고통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고독은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자기에 대해 돌아보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특히 이메일ㆍ스마트폰으로 소통하는 현대사회에서 고독은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같은 감염병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는 모두의 건강을 위해서도 고독이 필요하다."
고독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아이텔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작품에 집중하고 싶어서다. 단절 속에서 작품에 집중할 수 있다."
현대인들의 고독한 내면을 보여주기 때문일까. 유독 국내 출판사들은 책 표지에 그의 그림을 많이 사용했다. 문학동네는 2011년 출간한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첫 번째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에 아이텔이 2004년 그린 '보트(Boat)'라는 제목의 유화를 표지 그림으로 사용했다. 문학동네의 문학 전문 출판 브랜드 난다는 고(故) 황현산 문학평론가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사소한 부탁' '잘 표현된 불행'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에 모두 아이텔의 그림을 사용했다.
출판사 작가정신도 지난해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최수철 작가의 장편소설 '독의 꽃' 표지 그림으로 아이텔이 2008년 그린 유화 '매트리스(Matratze)'를 사용했다. 한겨레출판은 2018년 출간한 신형철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 아이텔의 그림을 썼다.
아이텔은 "책 표지에 내 그림이 많이 사용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좋은 책들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내 서적 표지로도 많이 사용된 팀 아이텔의 작품들. 왼쪽부터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에 표지로 사용된 2004년작 '보트', 황현산 문학평론가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에 표지로 사용된 2011년작 'Untitled(Observer)', 최수철 작가의 장편소설 '독의 꽃' 표지로 사용된 2008년작 '매트리스'
원본보기 아이콘아이텔은 페이스갤러리가 선보이는 신작에서 차가운 색을 더 많이 사용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힘든 상황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그는 코로나19 때문에 작업하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파리에서 여러 차례 이동 제한령이 발동돼 스튜디오에 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집에서 작은 수채화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텔은 "유화의 경우 수정할 수 있어 이미지를 천천히 구상하면서 그릴 수 있는데 수채화는 수정할 수 없고 짧은 시간에 집중해 그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에는 유화와 수채화가 함께 전시된다.
아이텔은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주변 사진을 찍고 사진 속 풍경을 그림으로 옮긴다. "스튜디오에 많은 사진이 널브러져 있다. 그중 눈에 띄는 사진들을 캔버스로 옮긴다."
아이텔은 올해 코로나19 탓에 한국을 방문하지 못했다. 하지만 앞서 두 차례의 학고재 전시 때는 방한해 한국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이 사진들을 캔버스로 옮겼지만 아직 전시에서 선보이진 않았다.
아이텔은 1971년 독일 레온베르크 태생으로 슈투트가르트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독일 통일 후 동독 지역으로 넘어가 1997~2001년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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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는 동독 시절 베를린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였다. 예나 지금이나 문화와 예술의 도시다. 분단 후 서독의 예술가들이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예술을 추구한 반면 동독 쪽에서는 전통 방식의 회화를 고수하고 있었다.
통일 이후 독일의 많은 화가 지망생이 기본적ㆍ전통적 회화 방식을 배우기 위해 옛 동독으로 넘어갔다. 아이텔은 이런 흐름 속에서 구상화가 그룹인 '신 라이프치히 화파(New Leipzig School)'의 일원으로 이름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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