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호프 役 김선영·케이 役 조형균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변신'으로 유명한 유대인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40세에 요절했다. 그는 죽기 전 친구 막스 브로트(1884~1965)에게 발표되지 않은 자기의 원고를 모두 불태워 없애달라고 부탁했다. 브로트는 카프카의 유언을 따르지 않았다. 원고를 보존했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부를 출판했다. 덕분에 영원히 묻힐 뻔한 카프카의 소설들이 세상에 알려졌다.


브로트가 죽으면서 원고는 비서이던 유태인 여성 에스터 호페(1906~2007)에게, 다시 호페의 딸 에바 호페(1933~2018)에게 넘겨졌다.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은 2008년 에바 호프를 상대로 카프카 유작을 반환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창작 뮤지컬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은 카프카 유작 반환 소송을 모티프로 만들어졌다. 지난해 초연했고 오는 19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재연에 돌입한다.

'호프' 역을 맡은 배우 김선영  [사진= 알앤디웍스 제공]

'호프' 역을 맡은 배우 김선영 [사진= 알앤디웍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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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 김선영(46)과 조형균(36)은 각각 호프와 케이(K)로 지난해 초연에 이어 재연 무대에도 오른다. 두 배우는 올해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주연상을 함께 받았다.


법정 다툼을 다루기 때문에 '호프'의 무대는 여느 뮤지컬과 달리 화려하지 않다. 대중이 좋아하는 절절한 로맨스도 없다. 하지만 '호프'는 초연 때 흥행했고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최고 영예인 대상을 거머쥐었다.

조형균은 "캐릭터의 특별함이 있고 캐릭터의 삶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관객들이 많이 감동한다"고 말했다.


주인공 호프는 78세의 노파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평생 원고만 목숨처럼 지키려 한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미친○'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남자 주인공 격인 케이는 호프가 평생 목숨처럼 지키고자 한 원고다. 의인화한 캐릭터다. 실제 K는 카프카 소설의 주인공을 상징한다. 카프카는 다수 소설에서 주인공 이름으로 K를 사용했다.


극은 호프가 원고를 반납하고 집에 돌아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호프는 자기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집착하던 원고를 내려놓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새로운 삶을 찾는다. 78세에 새로운 희망,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선영은 '호프'에 대해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누구든 불안하고 힘들어서, 절대 놓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씩 갖고 살아가지 않나. 그게 사람일 수도, 돈일 수도, 물건일 수도, 어떤 관계일 수도 있다. 나도 호프처럼 뭔가 부여잡고 불안해하며 평생을 고집대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작품 속 인물의 삶에서 내 삶을 돌아본다는 게 흔한 얘기 같지만 그런 작품이 많지 않다."


조형균도 "내가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는지, 정말 나답게 살고자 한다면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자아성찰을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케이' 역을 맡은 배우 조형균  [사진= 알앤디웍스 제공]

'케이' 역을 맡은 배우 조형균 [사진= 알앤디웍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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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케이는 호프의 주변을 맴돌며 끊임없이 호프와 대화한다. 하지만 케이는 호프 말고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존재다. 관객들에게는 호프와 케이가 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극 중 배우들에게 호프는 조현병 환자처럼 혼잣말하는 사람일 뿐이다.


조형균은 케이가 호프에게서 파생된 존재라고 말했다. "호프의 인생에서 나온 존재이니 호프라고 생각하면 된다. 케이는 호프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호프가 정말 하고 싶던 말을 대변해준다. 예를 들면 호프가 법원에 가기 싫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케이는 가자고 말한다. 호프는 '안 갈래'라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 가고 싶은 것이다."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호프에게 원고에 대한 집착은 버리고 네 삶을 찾으라고 조언해주는 존재도 케이다.


조형균은 초연에 앞서 작품 개발 과정에서부터 참여했다. 작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의인화한 캐릭터여서 처음에는 난감했다. 하지만 배우라면 창작 작품에 애착이 가게 마련이다. 백지 상태에서 내가 캐릭터에 색깔을 입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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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데뷔한 김선영은 데뷔 20년이 되는 시점에 '호프'를 만났다. "배우 생활 20년이 넘어가는 시점에 만난 작품인데 많은 사랑을 받아서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앞으로 계속 공연되는 작품이었으면 한다. 다행히 78세 역할이기 때문에 건강하고 목소리만 나온다면 시즌마다 깊어지는 호프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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