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시행한다. 그동안 "저출산 예산을 백 몇십조 원 이상 써놓고도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 계획이다. 하지만 '썼다는' 저출산 예산은 정부 각 부처에서 저출산ㆍ고령사회위원회에 제출한 것을 합쳐 놓은 게 대부분이다. '소프트웨어 중심대학 지원사업, 대학 인문역량 강화' 사업을 독자들께서는 금방 저출산 예산으로 연결시킬 수 있나? 그렇게 수백억, 수천억 그리고 10여년을 모아서 수십조 원의 돈을 정부와 언론이 저출산 예산으로 국민들에게 잘못 알렸다.


그러다 보니 저출산·저출생 관련 정책은 '돈 써봤자 소용없는' 비인기 주제가 되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대통령 직속이면서 대통령 자신이 위원장인 위원회다. 수많은 정부위원회가 있지만 대통령 직속위원회는 소수다. 그중에서도 대통령이 위원장인 위원회는 불과 몇 개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이전 정권이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던 저출산ㆍ고령사회위원회를 '부활시킨' 변화를 생각하면 실망스럽다. 그렇다면 대통령 입에서 왜 저출산·저출생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없는 것일까? 왜 1년에 한두 번 정도 부위원장을 독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힘'을 실어주지도 않을까?

이유는 추측밖에 할 수 없는데, 일단 두 가지다. 정부 차원에서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 변동이 정책적으로 대응할 만큼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다. 저출산·고령화는 노인인구 부양 부담, 사회 각 영역에서 발생하는 노동력 부족 현상과 영역 간 불균형·격차 등 문제를 가져온다는 예측이 넘쳐났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등 미래산업 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노동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지고, 산업·경제 영역 간 인력 이동과 일자리 재배치 등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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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과거 산아제한을 국가가 강제할 수 있던 시기와 달리 지금은 아이를 낳는 선택을 강제할 수 없다. 3차 기본계획까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몇몇 중점 사업을 모은 저출산 대응 수준으로는 아이울음 소리가 사라지는 현상을 막을 수 없게 됐다. 관심을 보여봤자 당장 효과가 없는 주제를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언급하는 것은 큰 정치적 부담이 된다. 그러다 보니 최근 1~2년 사이 저출산·저출생을 자신의 어젠다로 삼으려는 비중 있는 정치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2018년을 기점으로 언론보도 기준 저출산 담론의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저출생 언급이 상대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저출생만 말하면 마치 성평등한 이미지를 갖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단어는 변했지만 내용이 없다.

기초연금을 확대하는 등 물적 자원을 투입하면 노인 빈곤율은 낮출 수 있다. 그러나 출산을 결심한 순간부터 아이가 성장하고 부모가 노인이 되는 생애 모든 과정에서 사회혁신이 일어나지 않으면 저출산·저출생 현상의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이 낳기를 포기하는 사람과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한국 사회는 망가졌다. 이런 상황은 몇몇 정책 과제를 바꾸고 늘린다고 변하지 않는다.


성평등이 기본이 돼야 한다. 가족에 대한 전통적 관념이 변해야 한다. 일자리·주거·의료·소득 관련 사회안전망 구축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놀면서 자랄 수 있도록 교육개혁이 필요하다. 동일노동·동일임금, 일·생활균형이 가능한 노동시장 개혁도 함께 해야 한다. 사는 동네에 따라 사람값이 달라지는 지역차별이 지역균형으로 변해야 한다. 당장 몇 년 안에 효과를 볼 수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 대개조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모두의 참여와 양보, 희생과 고통을 요구해야 한다. 누가 나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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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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