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8차 사건 재심 증인으로 출석
"연쇄살인 14건 모두 내가 했다"
"저로 인해 죽은 피해자들 영면 빈다"
"유가족과 사건 관련자 모두에게도 사죄"
'사죄 진정성' 논란…전문가 "언론에 나오는 상황 즐길 수도"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재판의 증인으로 채택된 이춘재(56)가 2일 오후 법정에 출석했다. 사진은 이춘재가 출석해 증언한 법정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재판의 증인으로 채택된 이춘재(56)가 2일 오후 법정에 출석했다. 사진은 이춘재가 출석해 증언한 법정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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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꼽히는 '이춘재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 이춘재(56)가 2일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 14건 연쇄살인·35건의 강간 혐의와 의혹에 대해 인정했다. 피해자들에게는 사죄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춘재의 사죄가 과연 진정성이 있느냐는 일종의 숙제로 남았다.


십수 년이 넘게 수감 생활을 하면서 사죄의 뜻을 밝힐 시간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연쇄살인 사건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을 통해 혐의가 입증되자 그제야 범행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각각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도 모두 끝나 처벌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와 유족에 사과하는 것은 선 뜻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도 있다. 이중적인 태도 아니냐는 지적이다.


일부 사건에서 보인 이춘재 모습도 이 같은 비판에 힘을 싣는다. 현재 이춘재는 처제를 성폭행하고 무참히 살해한 혐의로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검거 당시 이춘재는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바 있다. 또 자신이 저지른 경기 화성 일대 연쇄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연관성이 없다며 수사에 혼선을 초래했다. 처제 살해 사건에 대해서는 항소와 상고를 거듭하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궁지에 몰려서야 범죄 혐의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말을 내뱉는 게 이춘재의 성향이고 지금의 사죄 역시 사과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려 사과를 한 것 아니겠냐는 지적이다. 범죄 심리 전문가는 이춘재 사과의 진정성이 없다고 분석했다.


2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9차 공판에 증인으로 채택된 이춘재가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호송차가 도착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2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9차 공판에 증인으로 채택된 이춘재가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호송차가 도착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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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로 인해 죽은 피해자들의 영면을 빌며, 유가족과 사건 관련자 모두에게도 사죄드린다"


이날(2일) 오후 수원지법 형사 11부(박정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8차 재심 재판 법정에 출석한 이춘재는 재심을 청구한 청구인 변호인 측 질문인 범행 동기, 범행 인정 여부 등에 답했다.


이춘재는 범행 동기에 대해 계획 살인이 아닌 즉흥적으로 이뤄진 살해라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을 살해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답을 찾지 못했다"면서 "어떤 계획이나 생각을 갖고 한 것이 아니라 불을 찾아가는 불나방처럼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범행 과정에서 일종의 특징으로 볼 수 있는 '시그니처'(범인이 범행 과정서 남기는 일종의 공통적 흔적)인 시신 훼손 및 유기 등에 대해서는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함이지 어떤 계획에 의한 행위가 아니라고 일축했다.


이춘재는 "결박의 주목적은 반항제압, 재갈을 물린 것은 소리를 막기 위함이었다"며 "속옷을 얼굴에 씌운 경우는 피해자가 나의 신원(얼굴 등)을 알아차릴 것 같은 상황에서 한 일"이라고 말했다.


변호인 측이 이번 8차 재심은 물론 8차와 9차 사이 벌어진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과 이춘재가 경찰 조사에서 밝혔던 '12+2'건의 살인사건과 '19+15'의 강간 및 강간미수 사건을 언급하며 "본인이 직접 적으면서 자백했는데 맞느냐"고 묻자 "맞다. 모두 내가했다"고 답했다.


재판 말미에는 자신이 저지른 범행으로 인한 피해자와 유족에 사죄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춘재는 "제가 저지른 살인 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형생활을 한 윤씨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면서 "저로 인해 죽은 피해자들의 영면을 빌며, 유가족과 사건 관련자 모두에게도 사죄드린다"고 했다.


연쇄살인범 이춘재. 사진은 1980년대 사건 발생 당시 수사기관이 제작한 이춘재 몽타주(좌). 우측은 고교시절 이춘재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연쇄살인범 이춘재. 사진은 1980년대 사건 발생 당시 수사기관이 제작한 이춘재 몽타주(좌). 우측은 고교시절 이춘재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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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춘재 사죄 진정성 있나…연쇄살인 발각돼서야 혐의 인정


그러나 이 사과에 대한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이춘재는 1994년 자신의 처제를 잔혹하게 살해하고도 혐의를 부인하는 등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공감 능력이 없거나 아예 피해자에 대한 사과의 뜻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이 사건으로부터 26년이 지나 연쇄 살인 피해자들에 사죄의 뜻을 밝혔지만, 사과 흉내만 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른바 '청주 처제 살인사건'이란 이춘재가 자신의 처제를 상대로 수면제를 먹이고 성폭행한 뒤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다. 1·2심 판결문 등에 따르면 이춘재는 아내와 1992년 4월에 결혼했다. 10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1991년 4월)이 발생한 지 1년 뒤다.


굴착기 기사였던 그는 골재 채취 회사에서 일하던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이춘재는 처가와는 원만한 관계로 알려졌다.


그러나 2심 판결문 등에 따르면 재판부는 이춘재가 "내성적이지만 한 번 화가 나면 부모도 말리지 못할 정도의 성격 소유자"라고 봤다. 아들을 방안에 가두고 무차별로 폭행하고 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재떨이를 집어 던지고 마구 폭행하기도 했다.


그러다 1994년 1월13일 오후 이춘재는 "토스트기를 가져가라"며 처제를 집으로 불러들여 처제에게 수면제 탄 음료를 미리 준비해 마시게 했다. 하지만 처제가 수면제 효과가 들기 전 "친구와 교회를 가기로 약속했다"며 떠나려하자 성폭행했다.


이후 둔기로 내려쳐 살해한 뒤 시신을 검은 비닐봉지와 처제의 옷, 처제와 아내의 스타킹 등으로 싸매고 묶어 유기했다. 경찰에 붙잡힌 이춘재는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항소와 상고를 거듭하면서 끝까지 처제 성폭행·살인 혐의를 부인했다.


이렇게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이춘재지만 경기 화성시 태안읍 진안1리(현 화성시 진안동)에서 고향 일부 주민들은 이춘재에 대해 '착한 청년'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통 청년의 모습을 하고 뒤로는 끔찍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사실상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 셈이다. 피해자를 향한 이춘재의 사죄를 두고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화성 실종 초등생 유류품 발견 장소에 놓인 꽃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화성 실종 초등생 유류품 발견 장소에 놓인 꽃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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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는 이춘재가 자신의 범행에 인정하는 과정을 보면 진심으로 피해자와 유족에 사과했는지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춘재가 연쇄살인 사건에 대해 처음에는 부인하지 않았나, 그러다가 공소시효가 만료로 처벌 받지 않는다니까 나중에서야 범행 인정했다"면서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8차 사건' 재심과 관련해서는 "이렇게 언론에 나오는 상황을 내면적으로 즐기는 것 아니겠나"라고 분석했다.


한편 이춘재는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붙잡혀 1995년 7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지난해 8월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미제수사팀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들의 유류품에서 검출된 유전자(DNA)가 이춘재의 것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프로파일러 등을 급파해 이춘재에게 자백을 받아냈다.


재심이 열린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경기도 화성시(당시 화성군) 태안읍에서 박모(당시 13세) 양이 자택에서 성폭행당하고 피살된 사건이다. 경찰은 인근 농기구 공장에서 근무하던 윤성여(53) 씨를 범인으로 지목해 자백을 받아냈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경찰의 강압수사에 의한 허위자백이었다고 항소했지만, 2·3심 재판부는 이를 모두 기각했다. 결국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씨는 지난 2009년 8월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이후 8차 사건 역시 이춘재가 저지른 것으로 알려지면서 윤씨는 지난해 11월 수원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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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는 1989년 9월15일부터 1991년 4월3일까지 모두 14건의 살인과 9건의 성폭행을 저지른 진범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살인죄 공소시효 15년이 만료돼 처벌을 받지 않는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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