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時論]다수결의 함정

최종수정 2020.10.20 12:03 기사입력 2020.10.20 12:03

댓글쓰기

조희진 법무법인 담박 대표변호사

조희진 법무법인 담박 대표변호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질 않는 가운데 집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며 지내는 것이 일상이 돼버렸다. 영화를 보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을 유사하게 다룬 영화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컨테이젼' '나는 전설이다' '킹덤'과 같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다룬 영화도 그렇고 '하우스오브카드' '지정생존자' '홈랜드'와 같이 국가 권력과 테러 등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보면서 마치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는 듯했다. 허구에 기반을 둔 소설 같은 얘기라든지, 현실성이 떨어지는 황당한 줄거리라고 가볍게 넘기기엔 요즘 돌아가는 현실이 예사롭지 않다.


대통령 탄핵 이후 국정농단 적폐 수사로 이념 및 진영 간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진 가운데 우리에게 닥친 코로나19 사태는 사회 전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코로나19 팬데믹의 공포 속에 치러진 총선에서 여당은 압도적 다수로 승리했다.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국론을 통일해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심리가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운영하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 못 할 바 아니고, 어려울수록 개인의 입장을 주장하기 전에 전체의 입장을 우선해야 하는 점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그러나 아무리 위기라도 전체를 위해 개인의 자유와 인권, 민주주주의 가치를 희생하는 것이 무조건 옳고 당연한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라는 대의명분 앞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민주적 가치,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 언론 및 집회결사의 자유는 뒤로 밀린다. 국민은 원전 폐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임대차보호법, 차별금지법, 기본소득제도, 기본자산제도 등과 같은 중차대한 정책과 입법이 국민 개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대가와 희생을 요구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제대로 된 논쟁이나 설득, 타협의 과정은 생략된 채 이끌려 간다.


다수결의 원칙은 민주주의 의사결정 방식 중 하나다. 의사결정의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전원일치이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다수결의 원칙을 적용한다. 다수결의 원칙은 소수의 판단보다는 다수의 판단이 더 합리적일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집단지성이 더 낫지 않을까'라는 것이지 다수결이 항상 옳다는 것은 아니다. 소수의 의견이 무시되는 경우에 중우정치로 몰락하는 사례를 우리는 역사에서 많이 보아왔다. 다수의 횡포로 전락할 우려가 있으므로 소수로 몰린 사람들이 승복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절차가 필요하다.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소수와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와 타협을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


다수결의 원칙을 적용하는 데는 많은 본질적인 제약 조건이 있다. 예를 들어 개인적인 신념이나 사상, 이데올로기와 같은 가치 체계에는 다수결의 원칙을 적용할 수가 없다. 과학적인 지식이나 인식에 관한 사항 역시 다수결의 원칙으로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 또한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려면 구성원들의 자유 의사에 따른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다수결의 원칙이 쉽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다수결이 선이고 옳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애당초 다수결로 결정할 사안이 아닌 것을 선거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는 것을 내세워 소수의 극렬한 반대를 묵살하고 다수결로 잘못된 정책을 강행하려 한다면 이는 다수결의 원칙을 악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수결의 원칙이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식으로 자리 잡으려면 충분한 대화와 토론을 거쳐야 한다.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결정됐다 하더라도 그것을 반대했던 소수의 의견은 존중돼야 한다. 더 많은 사람의 생각이 다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는 다양한 사람의 생각과 의견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다수결의 함정을 극복할 시스템 마련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조희진 법무법인 담박 대표변호사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