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종교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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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대규모 박해가 마지막으로 끝난 것은 서기 311년이다. 다음 해 10월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서로마제국의 통치권을 놓고 경쟁자 막센티우스를 치기 위해 로마로 진군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때 그와 그의 휘하 장졸들은 하늘에 나타난 불타는 십자가를 목격했다. 십자가와 함께 '이로써 정복하라(Teuto nika)'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그 십자가는 그의 군기(軍旗)에 새겨졌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를 공식적으로 끝낸 것은 서기 313년이다. 믿음의 자유가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박해를 통해 착취하거나 파괴한 모든 재산을 반환할 것을 천명했다. 박해와 피해를 보상할 것임 또한 밝혔다. 그때까지 박해가 없지 않던 동로마제국까지 그가 평정한 것은 324년이다. 아직 로마 다신교 세력이 다수였지만 점차 쇠락하고 기독교가 그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모든 종교의 역사에서는 피비린내가 난다. 믿음의 자유는 피를 통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일까?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다음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믿음의 자유가 모든 갈등을 끝낸 것이 아니다. 새로운 대립의 시작이었다. 콘스탄티누스의 시대에는 예수와 하느님의 관계에 대한 이견 때문에, 그 뒤에는 예수와 인간의 관계에 관한 서로 다른 견해 때문에 반목했다.


갈등은 종교와 믿음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이슬람에서는 수니와 시아로 갈라서서 서로 반목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갈등의 심각성은 덜하다고 생각되지만 불교에서도 여러 종파가 대립하고 있다. 기독교나 이슬람 그리고 불교와 같은 고급 종교에서 이런 지경이니 하물며 사이비 종교의 갈등과 타락은 보지 않아도 짐작할 만하다. 나아가 종교 사이의 갈등은 인류의 역사에서 적지 않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종교가 특히 타락하기 쉬운 경우는 정치와 결합될 때다. 십자군은 정치와 종교가 결합돼 초래한 재앙 가운데 하나였다. 종교재판 또한 정치적으로 악용됐다. 프랑스의 필리프 4세(Philippe IVㆍ1268~1314)가 주동이 돼 저지른 템플기사단의 종교재판은 최악이었다. 종교적인 이유로 네덜란드에 가한 스페인 펠리페 2세(Felipe IIㆍ1527~1598)의 박해는 끈질겼다. 개신교와 가톨릭 국가의 대립으로 발발한 30년 전쟁(1618~1648)은 17세기 전반 유럽을 큰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 모두 정치와 종교가 얽혀 빚어낸 비극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모든 종교는 위기다. 성직자들이 정치적인 혹은 개인적인 목적으로 종교를 악용하는 사례가 너무나 빈번하다. 중세였다면 종교재판까지도 불사했을 것 같은 기세다. 절대자에 대한 믿음 때문에 그러는 것 같지도 않다. 사회 정의를 위한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하다못해 방역을 위해 모임을 자제해달라는 부탁마저 거부한다. 절대자가 보호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런 짐을 지는 것을 절대자는 즐겨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무엇을 믿는지 모를 사람들이 성직자인 척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더군다나 성직자 가운데에는 무신론자로 보이는 인사 또한 적지 않다. 절대자가 위에서 빤히 내려다보는데도 그와 같은 언행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종교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보이지 않는 절대자를 신앙하는 것은 그 자체로 숭고한 것이다. 그런 믿음을 악용하는 성직자들은 본인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절대자는 평화를 주고 간다고 하는데 그를 따른다는 인사들은 그것을 깨고 있는 것이다. 전부는 아니라고 위안 삼지만 종교의 타락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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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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