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가을귀]사죄가 넘쳐나는 시대…진정한 사죄의 기술
숀 오마라ㆍ케리 쿠퍼 '사죄없는 사과사회'
영화 '피터 래빗(2018)'은 개봉 당시 논란에 휩싸였다. 피터와 친구들이 블랙베리 알레르기가 있는 맥그리거에게 블랙베리를 던지는 장면이 문제로 지적됐다. 맥그리거는 숨이 막힌 듯 고통스러워하다 에피네프린 주사를 맞고서야 진정된다.
일부 관객은 '피터 래빗'이 음식 알레르기를 희화화한 데 분노했다.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는 문제를 가볍게 묘사했다며 소셜미디어에서 관람 거부 운동까지 벌였다. 미국천식알레르기재단(AAFA)은 소니픽처스에 우려가 담긴 공개서한을 보냈다. 모욕을 당한 대상을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미국인 1500만 명으로 넓혀 문제 공론화에 나섰다.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 주요 매체가 헤드라인으로 다루면서 1만8000명 이상이 사과를 요구하는 탄원서에 서명했다.
영화에서 피터는 많은 악행을 저지르지만 결국 스스로 뉘우친다. 소니픽처스는 이런 결말이 반성을 위한 중요한 묘사였다고 언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별 방어 논리도 펴지 않고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별다른 후속 조치는 없었다. 소니픽처스는 상영을 취소하지 않았고, 불매운동 위협 속에서도 개봉 첫 주 1억달러 이상 벌어들였다.
결과적으로 논란과 관련된 모든 주체는 승자가 됐다. 언론은 비판 기사로 분노를 유발했고, 영화비평가들은 사과를 받아냈으며 소니픽처스는 사과성명만으로 논란을 잠재웠다.
이 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면 소니픽처스는 더욱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냈을지 모른다. 불매운동 움직임은 위협에 그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프로미식축구(NFL) 선수들이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 표시로 국가가 연주될 때 무릎 꿇은 이후 NFL은 불매운동 위협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도 건재하다.
누구나 쉽게 이슈에 반응하고 참여하면서 비난 또한 스스럼 없어졌다. 작은 비난도 언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질지 모른다. 그 결과 사소한 문제이거나 사과가 되레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상황인데도 무턱대고 사과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로써 진중한 사과가 필요한 상황에서 '미안하다'는 말에 무게조차 실리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숀 오마라ㆍ케리 쿠퍼의 '사죄없는 사과사회'는 사과의 위기가 일상은 물론 정치ㆍ비즈니스의 위기로 직결된다고 경고한다. '미안하다'는 말이 점차 의미를 잃어가면서 사과가 기업 혹은 개인의 책임 회피나 홍보 수단으로 악용된다고 지적한다. 진실과 진심이 배제된 무조건적 사과를 부추기는 환경을 비판하며 충동적 사과를 배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잘못된 관행은 인터넷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개인이나 조직에 분노하는 이들 상당수는 실수ㆍ오해ㆍ잘못과 큰 연관이 없다. 개인이나 조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노가 아닌 것. 그러므로 꼭 불매운동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인터넷에서의 분노가 고객만족을 예측하는 도구로 사용되기에 부적합한 셈이다. 실제로 사우스웨스트항공은 트위터에 올리는 글의 64%가 사과다. 하지만 여전히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최고 등급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라이언항공의 대처는 주목할 만하다. 라이언항공은 2018년 10㎏ 무료 수하물제도를 없애 소셜미디어상에서 테러나 다름없는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많은 사람이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라이언항공은 위협이 단절된 공간에서만 이뤄진다는 확신 아래 다음과 같이 성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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