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 낙태죄 폐지, 예수께서는 뭐라실까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269조와 270조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헌법 10조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지금까지는 모자보건법 14조에서 규정하는 '인공임신중절(낙태)' 예외 조항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 형법에 따라 무조건 처벌하도록 돼 있었다. 그런데 이 조항이 자신이 갖는 존엄성을 토대로 여성이 스스로 내리는 낙태 결정을 과잉처벌한다는 요지의 판결이다.
이로써 낙태를 처벌하던 형법의 효력이 일시정지됐다. 그리고 입법자는 올해 12월까지 낙태처벌 조항을 대체하는 새로운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판결 자체는 낙태를 무조건 비범죄화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성의 입장을 고려해 낙태의 처벌 범위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낙태 처벌을 둘러싼 논쟁이 재연될 조짐이 있다.
어쨌거나 헌법재판소가 못 박은 연말까지 대체입법을 만들어야 하는데 시간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여성의) 자주적 결정권을 입에 달고 살면서 낙태의 비범죄화를 주장했던 여러 의원님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다. 정치적 이해 득실 계산에 머릿속들이 복잡하신 모양이다. 법무부가 법을 만들면(정부입법) 절차가 더 복잡해짐에도 불구하고 의원님들이 나설 기미(의원입법)가 잘 보이질 않는다. 또 다른 한편에서 (태아의) 생명권에 목매달고 계신 여러분들이 낙태 비범죄화 형법 개정안만 나오기를 기다리시는 듯하다. 헌법재판소 판결 때문에 낙태죄 자체가 사라지거나 처벌 범위가 대폭 축소된 법안이 나올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만 분명히 하자. '생명권 대 결정권' 대결 구도로 계속 갈 수 없다. 이 구도를 유지하는 한, 낙태를 결정하는 여성은 '생명을 죽이는, 나쁜 여자'가 된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너무나 많은 '나쁜 여자, 생명을 죽이는 여자'를 만들어왔다. 게다가 국가가 나서서 성공적으로 밀어붙인 1970·1980년대 '가족계획사업'을 통해 공식적으로 100만 이상의 태아를 낙태하도록 했다. 이른바 'MR(월경조정술) 사업'의 결과다. 개발독재시대에 종교는 형식상 저항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침묵했다.
그러는 사이 형법 269조와 270조는 죽은 법이 되었다. 혼자서 결정하고 혼자서 산부인과 의사 손에 자기 몸을 맡기면서 수백만 여성들이 '나쁜 여자, 죽이는 여자'가 됐다. 사회·경제적 이유로 낙태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에게 한국 사회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아이의 아빠일 수도 있는 남성들은 모두 도망갔다. 그리고 낙태를 선택한 여성에게 언제든지 돌을 던질 수 있는 태아의 생명권을 지키는 사람들만 남았다. 이 상황에서 예수는 뭐라고 이야기할까? 종교 차원에서 규정하는 생명 개념에서 본다면 낙태는 죄일 수 있다. 그런데 그 죄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예수가 물어본다면 누가 나설 수 있을까?
낙태 자체가 하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을 무시하는 결과라는 두려움이 종교적 차원에서는 있다. 그러나 세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입장에서 낙태를 생각해봐야 한다. 혼자든 둘이든 제대로 낳아 키울 수 있는 여건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사회다. 낙태한 여성에게 당당하게 돌 던질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낙태죄 처벌에 목소리를 높일 때가 아니다.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혼자서라도 당당하게 키울 수 있는 돈, 집, 직장 등 이른바 모성의 재생산권을 보장해야 한다. 임신이 축복이 아닌 저주가 돼 혼자 힘들어하는 여성이 국가 운영·공인 상담소에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낙태 처벌을 이야기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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