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 의좌형 미륵삼존불 보물 지정
정조 친위부대 청사 그린 건축화도 보물로…
신라를 대표하는 조각 가운데 하나인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慶州 南山 長倉谷 石造彌勒如來三尊像)’과 조선 정조의 친위부대가 주둔한 청사 본영을 그린 건축화 ‘장용영 본영도형 일괄(壯勇營 本營圖形 一括)’이 보물이 됐다. 문화재청은 두 문화재를 각각 보물 제2071호와 제2070호로 지정했다고 27일 전했다.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은 경주 남산 계곡 지류인 장창곡 정상 인근 석실(石室)에 있던 불상이다. 7세기에 제작됐다고 추정된다. 삼국시대 미륵신앙과 신앙 행위를 가리키는 상징물로 평가된다. 삼국유사 탑상(塔像) 편에 따르면 선덕여왕 13년(644) 생의 스님은 경주 남산 골짜기에서 미륵상을 발견해 삼화령(三花嶺)에 봉안했다. 삼화령이란 경주 남산에 있는 금오봉과 고위봉, 그리고 두 봉우리의 삼각형 위치에 있는 봉우리를 통칭한다. 신라 시대에 화랑(花郞)이 기예를 닦던 장소이자, 미륵 사상이 융성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은 삼국유사 ‘기이(紀異)’ 편에서도 거론된다. 경덕왕이 승려 충담사(忠談師)를 누각 위로 불러 영접했는데, 그가 들고 있던 삼태기 속에 다구(茶具·차를 끓여 마시는 데 필요한 도구)가 가득했다. 경덕왕이 이유를 묻자 충담사는 “소승은 3월 3일과 9월 9일에 차를 달여서 남산 삼화령의 미륵 세존께 드리는데 오늘도 차를 드리고 오는 길입니다”라고 한다.
이 문화재는 ‘삼화령 애기부처’로도 불린다. 외형이 어린아이처럼 귀엽고 천진난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국유사에 원소재지로 기록된 삼화령의 근거가 될 만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불상이 발견된 계곡 이름을 붙여 불리고 있다.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은 의자에 앉은 자세를 취한 본존 미륵불과 좌·우 협시보살(脇侍菩薩·본존불을 좌우에서 보좌하는 보살) 입상으로 구성됐다. 중국 남북조 시대(5~6세기) 뒤 유행한 의좌상(倚坐像) 형태의 불상은 미륵불을 상징한 경우가 많다.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은 우리나라 의좌상 불상 가운데 시기가 가장 오래되고 희소한 예에 속한다.
본존상은 원만한 얼굴에 두 눈을 아래로 지그시 내려 사색에 잠긴 표정이다. 반면 두 보살상은 입가에 해맑은 미소를 띠고 있다. 크기는 1m 남짓으로 아담하며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문화재청 측은 “어린아이의 4등신 정도 신체 비례를 보이는 불·보살상”이라며 “중국 6∼7세기 북주 시대부터 수대에 걸쳐 유행한 양식”이라고 설명했다. “신라인의 신앙생활이 반영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의좌형 미륵삼존불이라는 점 등에서 학술·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했다.
장용영 본영도형 일괄은 채색화 한 점과 간가도(間架圖·건물의 평면도 또는 배치도를 그린 그림) 두 점을 통칭한다. 장용영은 정조가 1793년 왕권 강화를 위해 설치한 군영이다. 도성 안(서울 종로 4가 이현궁 터 추정)에 본영, 수원화성에 외영을 두고 운영했다. 1785년 설치된 장용위(壯勇衛)라는 국왕 호위 전담부대를 개편해 마련했는데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가 등극한 지 2년 만에 폐지됐다.
건축과 지형 현황이 회화, 도안으로 나타난 그림들은 정조 23년(1799)과 순조 1년(1801)에 제작됐다. 당시에는 도형(圖形)이라고 일컬었다. 전반적인 현황은 물론 관청의 중개축 변화를 왕에게 보고해야 해서 건축물을 정확한 축적에 기초한 평면도와 정교한 필치로 묘사했다. 과학적 측량이 이뤄지지 않던 시기에 축적과 지형 지세에 대한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대지 형태를 표현했다. 아울러 채색도와 간가도를 한 벌로 작성해 보는 이로 하여금 건축적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후대에 확장된 건물을 다시 그려 장용영이 확장돼 가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없어져 형체를 알 수 없는 장용영의 정확한 규모와 세부 건물의 기능을 알려준다”며 “정간 구획의 대형 평면도와 이와 합치하는 채색 건물도가 함께 남은 가장 오래된 사례이자 유일한 도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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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영 본영 도형 일괄은 제작 시기와 목적이 명확하고 건축기록화의 제작 방법 및 활용,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실증유물이다. 간가도와 채색도를 함께 제작해 다른 간가도와 차별성을 보인다는 점과 사실적 묘사로 회화적 예술성과 풍부한 정보를 동시에 전달하는 점 등에서 역사는 물론 예술, 학술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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