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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좀비영화 열풍이 반갑지 않다

최종수정 2020.08.06 11:14 기사입력 2020.08.0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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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도' 스틸 컷

영화 '반도' 스틸 컷



바야흐로 좀비영화 전성시대다. '부산행(2016)'이 상업성을 입증한 뒤로 줄기차게 쏟아진다. '창궐(2018)', '기묘한 가족(2019)', '#살아있다(2020)', '반도(2020)'…. '여의도', '하프', '부평지하던전', '블랙아웃' 등 제작이 예정된 영화들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근원적 공포에만 의존하는 작품은 거의 없다. 대다수가 역설적 상황을 조성해 정치ㆍ사회의 부조리나 병폐를 비판한다. '부산행'은 국가 시스템의 마비를 부각했다. 세월호 참사를 가리킨 것. '창궐'과 드라마 '킹덤(2019~2020)'은 왕까지 좀비로 만들어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을 지적했다.

좀비는 영화에 등장하기 전 이미 저항적이고 비판적인 성격을 보였다. '살아 있는 시체'라는 의미는 서인도제도의 부두교 의식에서 유래했다. 인간의 영혼을 뽑아내 노예로 만드는 주술이다.


어원은 '은잠비 음팡구(Nzambi Mpungu)'라는 창조신. 풍요와 창조를 관장해 아프리카 콩고 사람들이 숭배했다. 존엄한 존재가 서인도제도에서 사악한 존재로 통용된 것은 부두교가 규정한 벌 때문이다. 악행을 저지른 자는 계속 일만 하는 노예로 만든다는 개념이 사람들 입에서 함축돼 전달됐다.


시발점은 15세기 유럽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백인들은 아프리카에서 납치한 흑인들을 노예로 부렸다. 그 즈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유럽 국가들은 앞다퉈 신대륙을 식민지화했다. 많은 아프리카 흑인을 보내 노예로 부렸다.

영화 '창궐' 스틸 컷

영화 '창궐' 스틸 컷



온갖 괴롭힘에 시달린 흑인들은 신에게 구원받고자 틈만 나면 은잠비를 불렀다. 백인들은 흑인들에게서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오는 이름을 두려워했다. 숭배하는 신이 예수뿐이어서 은잠비를 악마나 사이비 신으로 치부했다.


본래 부두교는 노예무역 과정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온 아프리카인의 고유 신앙과 기독교가 뒤섞여 탄생했다. 그러다 보니 백인을 향한 흑인들의 원망이 많이 담겼다. 이곳저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다 결국 아이티에서 흑인 노예와 혼혈인들의 반란으로 흑인 국가가 수립됐다. 당시 반란을 이끈 더티 부크만은 부두교 사제였다.


이들은 아이티 혁명 성공 이후 이전의 만행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백인들을 처형했다. 백인들에게 부두교는 이단일 뿐만 아니라 자기들에게 실질적 위협을 가하는 위험한 종교였던 셈이다.


좀비가 처음 등장한 영화는 1932년 아이티를 배경으로 제작된 '화이트 좀비'다. 부두교는 좀비를 만드는 사이비 종교로 표현됐다. 주술사 머더(벨라 루고시)는 농장주 보몽(로버트 프레이저)으로부터 의뢰받아 신혼여행 온 백인 커플을 좀비로 만든다. 그곳에는 이미 좀비로 변한 사람이 많다. 하나같이 머더의 명령에 따라 사탕수수 정제공장에서 기계처럼 일한다.


영화 '화이트 좀비' 스틸 컷

영화 '화이트 좀비' 스틸 컷



오늘날의 공격적 개념은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에서 처음 제시됐다. 1960년대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작품이다. 정부 관료들은 좀비가 어떻게 발생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흑인인 벤(듀에인 존스)은 좀비들과 이기적인 백인들을 물리치고 홀로 살아 남는다.


그러나 사람인지 좀비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총을 쏘아대는 백인 자경단에 의해 사망한다. 좀비들을 겨우 물리쳤으나 그들보다 더한 인간들이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비극적 결말에는 당시 벌어진 베트남 전쟁과 인종차별을 둘러싼 미국 사회의 분노가 담겨 있었다. 백인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온 좀비들에게서 흑인들의 시위를 떠올렸을 것이다. 흑인들은 벤을 보며 베트남 전쟁에서 희생된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했을 테고.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뒤 한동안 쏟아져 나온 좀비영화들이 그다지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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