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중' 스틸 컷

'간호중' 스틸 컷

AD
원본보기 아이콘


올해 방송가 최대 기대작 가운데 하나였던 드라마 시리즈 'SF8'이 다음 달 17일 MBC 방영을 앞두고 토종 실시간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 웨이브에서 선공개됐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옴니버스 시리즈 'SF8'은 영화와 드라마의 유례 없던 크로스오버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민규동, 김의석, 장철수, 한가람 등 한국영화감독조합의 주목받는 감독 여덟 명이 각각 하나의 단막극 연출을 맡아 완성도를 높였고, 기존 TV 드라마에서 보기 힘들었던 신선한 소재와 시도만으로도 호평받고 있다.

이 가운데 이유영, 예수정 주연의 '간호중'은 시리즈의 문을 여는 첫 번째 이야기다. 이번 프로젝트의 총괄자이기도 했던 민규동 감독이 직접 연출한 이 작품은 인공지능(AI) 로봇이 상용화한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뇌경색으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된 엄마(문숙)를 10년째 홀로 부양해야 했던 정인(이윤영)은 자기 얼굴과 똑같이 생긴 간병 로봇을 구입하고, 거기에 '간호중'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고급형 간병 로봇인 간호중(이윤영)은 정인의 식물인간 모친뿐 아니라 정인 역시 세심하게 돌본다. 하지만 정인은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엄마와의 병원 생활에 갈수록 지쳐가고, 간호중은 흔들리는 정인을 지켜보면서 고민에 빠지게 된다.


한국 드라마사에서 가장 야심 찬 프로젝트의 첫 주자답게 '간호중'이 다루는 내용은 꽤 묵직하고 진지하다. "주님이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부터 내게 울부짖고 있다." 구약 성서 '창세기'에 기록된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의 일화를 인용하면서 시작되는 '간호중'의 오프닝은 이 작품이 생명과 윤리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암시한다.

한 생명을 죽이는 행위는 하나의 세상을 파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만큼 중대한 범죄다. 그런데 인간이 편의를 위해 만들었을 뿐인 피조물이 인간과 같은 마음을 갖게 된다면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이는 SF 문학의 효시인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이후부터 이어져온 이 장르의 오래된 질문이기도 하다. '간호중'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간병 로봇'의 존재를 통해 바로 그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


'간호중' 스틸 컷

'간호중' 스틸 컷

원본보기 아이콘


'간호중'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드라마가 보여주는 미래와 지금의 한국적 상황이 맞닿는 지점에도 있다. 극중에서 간병 로봇의 인기는 우리 사회가 곧 진입하게 될 초고령화의 그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정인이 다녔던 고등학교가 헐리고 그 자리에 요양병원이 지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그 음울한 현실을 좀더 뚜렷하게 보여준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간병 로봇들이 하나같이 여성형이라는 점도 어두운 미래의 암시다. 미래 사회임에도 돌봄노동은 여성들의 몫이라는 것. 여성의 현실은 여전히 음울하다. 취직을 위해 한 회사에서 면접을 봤던 정인이 "그 나이 먹도록 뭐 했니. 결혼도 안 하고"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다는 장면까지 포함해, '간호중'은 미래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곳곳에서 강조한다. 초고령화와 성차별적 현실은 그렇게 홀로 생계와 부양을 담당해야 하는 젊은 여성 정인의 우울에 중요한 배경이 된다.


'간호중'의 민규동 감독은 'SF8' 제작발표회 당시 "크고 어렵고 서양의 독점 장르로 인식되는" SF 장르를 우리가 만든다는 것의 의의에 대해 강조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간호중'은 SF 전통의 고유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한국적 상황에 잘 녹여내 몰입도를 높이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그동안 글로벌 OTT 업체가 국내에서 급성장한 데는 레거시 미디어의 진부한 콘텐츠가 일조했다. 'SF8'은 그 지상파 방송이 기존의 경계를 넘어 다양하고 참신한 이야기를 발굴하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리고 '간호중'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 대중들과 좀 더 깊은 교감을 시도하는 작품이다.

AD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