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북미중재 악전고투 흔적…김정은, 볼턴 회고록 읽었나
김정은, 대남군사행동 전격 보류 지시
대남 확성기 철거·비난기사 대거 삭제
브레이크 없는 긴장 고조 ,北에도 불리
남북 관계가 최악을 향해 달려가는 상황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침내 등장해 예고된 군사행동을 전격적으로 보류시켰다. 자칫 군사적 충돌 상황으로 치닫을 상황이었던 남북 관계가 숨고르기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극적 반전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북한은 '전쟁 억제력' 문건을 논의했다고 강조해 남한 대신 미국을 겨냥한 듯한 압박성 메시지를 내놓기도 남겼다.
먼저 김 위원장의 이번 '보류' 조치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표류하던 남북 관계의 물꼬를 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24일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 보류를 지시했다는 점에서 일단 북한의 대남 군사행동은 속도 조절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초 우려됐던 접경지역 내 남북 간 군사적 긴장으로 비화되는 최악의 사태를 일단 모면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김여정 담화' 이후 남한에 대한 말폭탄 공세의 강도를 높여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 위원장의 보류 결정은 시점 면이나 내용 면에서도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한국 정부의 신속·단호한 대북 메시지 관리,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회고록 파문과 무관치 않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볼턴 회고록을 통해 한국이 막후에서 미국 내 관료적 저항을 이겨내려 노력하고 북·미 대화를 위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 드러났다"며 "북한 입장에서는 북·미 협상이 불투명한 가운데 한국의 역할 활용 가능성, 남북 관계의 역할에 대해 재평가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만난 뒤 평양으로 돌아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포옹으로 배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아울러 정면돌파전의 최전선으로 '경제전선'을 내세운 상황에서, 무제한적 긴장고조가 북한 내부적으로도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군사적 행동이 무력충돌로 이어지면 자신들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겠다는 판단"이라면서 "한미 군사훈련이 재개되면 자신들도 피곤해질 것을 우려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북한 스스로 숨고르기에 들어가고 긴장 수위를 조절하는 것은 내부적으로 속도를 조절하기 위함"이라면서 "경제 중심의 정면돌파전에 매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도하게 대외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고 위기 국면으로 나아가는 것이 긍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최전방 지역에 재설치한 대남 확성기 방송 시설을 사흘 만에 다시 철거하는 움직임도 그 일환으로 보인다. 이는 김 위원장의 '대남 군사행동 보류' 지시에 따른 후속 조치로 보인다. 또 준비한 1200만장에 달하는 대남전단 살포도 일단 보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역시 김 위원장이 주재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의 비준을 받아야 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다만 김 위원장이 군사조치의 무효화나 취소를 결정한 것이 아닌 만큼 향후 대응이 더욱 중요해졌다. 양 교수는 "(북한의 이번 발표는) 군사행동계획에 대한 보류이지 완전 백지화는 아니다"라면서 "정부는 상황 변화를 지속적으로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북관계가 최악을 향해 치닫는 상황 속에서 남북간 물밑 접촉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앞서 남북간 모든 대화 채널을 단절하겠다고 했으나, 그 이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서훈 국정원장 대북특사 카드'가 알려지지 않은 남북 간 채널을 통해 북측에 전달된 사실이 북한의 '결례'로 확인된 바 있다.
아울러 북한은 이번 당 중앙군사위 회의를 통해 대남 공세 속에서도 대미 관계를 의식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다는 평가다. 정대진 아주대 교수는 "김 위원장이 직접 주재하는 당 중앙군사위는 군사전략과 정책을 관장하는데, 최근 당 중앙군사위는 전쟁억제력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면서 "이번 중앙군사위 예비회의도 북한의 목표가 미국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 회의에서 '핵전쟁 억제력(5월 중앙군사위)'이 '전쟁 억제력'으로 표현이 완화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홍 실장은 "미국에 대해서도 긴장과 위험수위를 일변도로 높여가는 것보다는 리스크 관리를 해나가겠다는 톤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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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미국의 상응조치를 두고 보겠다는 의도는 여전히 담겨있다. 정 교수는 "전쟁 억제력을 들고 나오며 오는 8월 한미연합군사훈련 재개 논의에 따라 당 중앙군사위 차원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전략적 도발을 포함한 전쟁억제력 행사에 대해 얼마든지 추가 논의하고 실행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열어뒀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그러면서 "한미연합훈련재개 '보류'와 같은 동급의 맞교환 카드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며 "한미 간 긴밀한 정보공유와 대응전략 마련이 시급해졌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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