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신접살림 차린 도시,

집들이 선물을 들고 분당선 역을 나오다 읽게 된 영통(靈通). 훈 모르면 쓸모없는 한자, 영통역. 영혼(靈)이 통(通)하다. 신혼 생활 이야기를 듣는데도 단어가 머릿속을 짓누른다.

그건 아니지 않소? 당나라 이야기에 이혼기가 있소. 왕주와 천랑이라는 남녀가 사랑했소. 한데, 아버지가 딸을 혼인시키려고 했답니다. 그건 아니지 않소. 왕주는 실의에 잠겨 먼 데로 떠났는데 바닷가로 천랑이 찾아왔더랍니다. 그래서 외지에서 부부가 되었고. 세월 지나 고향 그리워지자 그들은 형주로 돌아갔소. 남편은 장인을 먼저 찾아가 떠난 일을 용서해 달라 했소. 그런데 장인 왈, 딸은 왕주가 떠난 뒤부터 병자로 누워 깨어난 적 없는데 뭔 소리냐 했답니다. 천랑이요. 육을 버린 영만으로 찾아간 거랄지.

혼령으로라도 나서는 게 사랑이라면,


나를 버리지 못한 내 영혼은 얼마나 강퍅한 것인가.

나만 남은 쓸모없는 몸 같아 그게 또 속상해서

나를 응시하다가 생각을 닫아 버린다.

모르는 결에 죽고도 사는 몸, 살고도 백발 성성 죽은 몸.

희비여 엇갈리도다.

내 속이 한없이 외로운 터널이다.

까맣게 잊고 살아 버린 게 틀림없다. 어쩐지 가는 방향이 이별 같달지.

그건 아니지 않소? …… 그렇지 않아, 언니?

낯설지만은 않은 목소리

출구는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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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연에 적힌 기담은 중국 당나라 때 전기소설인 진현우의 '이혼기'다. 이와 좀 비슷한 이야기로 중국 청나라 사람 포송령이 쓴 '요재지이' 중 '섭소천'이 있다. '섭소천'은 장국영과 왕조현이 주연한 정소동 감독의 영화 '천녀유혼'의 원작이다. 우리나라에도 산 자와 죽은 자가 운우지정을 나누는 설화들이 꽤나 있는데, '수이전' 중 최치원 관련 고사가 대표적이다. 각설하고, "혼령으로라도 나서는 게 사랑"이라면 "나를 버리지 못한 내 영혼은 얼마나 강퍅한 것"이랴. 사랑한다면서도 나서지 못하는 게 오히려 괴이하고 야릇한 일 아닐까.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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