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tage] SNS·혼밥 세대의 웃픈 자화상
뮤지컬 '차미'·연극 '1인용 식탁'…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가왕' 조용필의 명곡 '그 겨울의 찻집'의 한 구절.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뮤지컬 '차미'와 연극 '1인용 식탁'을 본 관객 중 누군가는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차미'와 '1인용 식탁'은 웃기고 흥미롭다. 특히 '차미'의 객석에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극 속의 주인공들은 고단하게 사는 오늘날 젊은 세대의 현실을 투영한다.
'차미'의 주인공 차미호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취업 준비생이다. '1인용 식탁'의 오인용은 갓 수습 딱지를 뗀 신입이다. 차미호와 오인용은 고단한 삶 속에서 다른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갈구한다.
두 극은 만화 같은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차미'에서는 차미호의 휴대전화 액정이 깨지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속의 또 다른 차미호가 현실 세계로 튀어나온다. '1인용 식탁'에서는 같이 밥 먹을 사람조차 없는 오인용 앞에 혼밥하는 법을 돈 받고 가르쳐주는 괴상한 학원이 나타난다. 비현실적인 상상은 고단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를 보여주는 듯하다. 차미호와 오인용이 행복을 찾으면서 극은 끝난다. 고단한 우리네 삶에 대한 위로다.
차미호는 자기 이름 마지막 글자를 뺀 '차미'를 SNS 계정 이름으로 사용한다. 차미호는 자신의 행복하고 예쁜 모습만 SNS에 남긴다. 그래서 SNS 속의 차미는 늘 행복하다. 그런 차미는 곧 차미호가 꿈꾸는 자신의 이상적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휴대전화 액정이 깨져 세상에 튀어나온 차미는 차미호보다 예쁘고 늘씬하며 능력도 뛰어나다.
차미는 차미호가 하지 못한 취직을 하는 것은 물론 짝사랑하는 선배 '오진혁' 앞에서도 당당하다. 차미호는 그런 차미를 통해 자신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극은 차미호를 통해 삶이 고단해도 날 인정하고 사랑해줄 때 내가 진정 꿈꾸는 이상적인 내 모습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1인용 식탁'의 오인용은 세월이 조금 더 지난 차미호의 모습 같다. 악전고투 끝에 취직하는 데 성공한 신입. 취직만 하면 인생이 술술 풀릴 줄 알았는데 사회생활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점심 때면 모두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밥 먹으러 가지만 오인용은 그들 속에 섞이지 못한다. 이유는 모른다. 누구도 오인용에게 함께 밥 먹으러 가자고 말하지 않는다. 오인용도 차마 "밥 먹으러 가요"라고 쉽게 말하지 못한다. 오인용은 할 수 없이 혼자 밥을 먹으러 다닌다. 처량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아 직장 동료들을 피해 다닌다. 우연히 혼밥하는 법에 대해 가르쳐주는 학원 전단지를 보고 찾아간다.
'1인용 식탁'의 원작은 2010 현대문학상 수상 후보작에 오른 윤고은의 동명 단편소설이다. 윤고은은 혼자 밥 먹는 이들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을 일종의 폭력으로 봤다.
"여자는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한 벌의 수저가 올려진 밥상은 권투가 벌어지는 링과 같다. 여자는 그 위에 홀로 서서 날아오는 시선을 맞는다. 호기심 많은 관중들이 레프트훅, 라이트훅, 시선을 날릴 때 (…) 그러다 가끔, 여자도 시선이 날아오는 쪽을 겨눈다."(윤고은 '1인용 식탁' 중)
연극 '1인용 식탁'의 무대는 링을 형상화한 사각이다. 객석도 권투 경기장처럼 사면에 배치됐다. 배우들은 사각의 무대 위에서 섀도복싱을 한다. 권투 선수는 나름의 스텝과 리듬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연극 '1인용 식탁'은 각자 살아가는 리듬이 있음을 보여준다. 함께 밥 먹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혼자 밥 먹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실제로 최근 혼밥족을 위한 식당이 늘고 있다. 삶이 복잡해지면서 식사 시간도 업무의 연장처럼 돼버린 고단한 우리네 삶과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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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서 혼밥족에게 최상위 과정은 고깃집에서 혼자 고기를 구워 먹는 일이다. 이는 에베레스트산 등정에 비유된다. 오인용이 10여분간 무대에서 삼겹살을 굽고 술도 한잔 마시며 막은 내린다. 사면의 관객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오인용을 멍하니 쳐다본다. 오인용이 악전고투 끝에 날리는 카운터 어퍼컷 한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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