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지방선거 수도권 압승한 보수정당, 2020년 총선 참패…이념구호 매몰돼 대안정당 기대감 흔들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민심의 변화를 읽지 못하면 '선거 폭풍우'가 다가와도 이를 감지하지 못한다. 정치적인 기반이 초토화된 뒤에야 원인 찾기에 분주한 장면, 기록적인 패배를 경험한 정당의 한결같은 모습이다. 2006년 5월31일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바로 그런 경우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정치적인 텃밭으로 여겼던 수도권에서 기록적인 패배를 경험했다. 서울 25개 구청장 선거 전패, 인천 10개 구청장 선거 전패, 경기도 31개 시장ㆍ군수 선거에서 단 한 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96명의 지역구 서울시의원을 뽑는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96명 후보자 전원을 당선시켰고 열린우리당 당선자는 0명이었다.

'보수정치'가 서울 표밭을 싹쓸이했던 선거, 한나라당은 여세를 몰아 2007년 정권탈환에 성공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이제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로 가야 한다"면서 "경제 선진화와 삶의 질의 선진화가 함께 가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심이 왜 한나라당을 선택했는지, 국민이 무엇을 기대했는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15일 국회에 마련된 개표종합상황실에서 '선거결과에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힌 후 상황실을 나서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15일 국회에 마련된 개표종합상황실에서 '선거결과에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힌 후 상황실을 나서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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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제1야당은 공안검사 출신인 황교안 대표를 전면에 내세웠다. 황 대표는 점잖은 이미지와는 달리 저돌적인 투쟁노선을 견지했다. 삭발과 단식을 통해 결기를 보였고 '좌파독재' 타도의 구호를 외쳤다. 황 대표는 총선 사전투표가 시작된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저 황교안이 종로에서 당선돼야만 대한민국의 추락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권력에 대한 의지는 엿보였지만 국민 삶을 개선시켜줄 해법 제시는 미흡했다.

이념 구호를 앞세워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전략은 20년 전에나 통했을 낡은 정치문법이다. 21대 총선을 관통한 큰 흐름은 좌파 대 우파의 이념 대결이 아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문제로 삶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어느 정치 세력에 힘을 실어야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있는지를 선택하는 선거였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황 대표는 문재인 정부를 사회주의ㆍ좌파, 자신들은 우파 애국세력이라고 표현하는 이념 대결 용어가 입에 밴 인물"이라며 중도층 견인 전략의 한계를 지적했다.


'제3의 길'로 유명한 영국 정치인 토니 블레어는 보수당 18년 집권을 끝내고 노동당 전성시대를 안겨준 인물이다. 블레어 총리의 강점은 정치의 유연함이다. 필요에 따라 상대 정당의 정책도 과감하게 수용해 정책에 반영했다. 이념에 사로 잡혀있던 기존 정치의 관행에서 탈피한 그의 선택은 민생과 경제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킨 원인이었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15일 국회에 마련된 개표종합상황실에서 개표방송 시청 후 당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15일 국회에 마련된 개표종합상황실에서 개표방송 시청 후 당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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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도 민생을 책임져줄 대안 세력이라는 믿음의 불씨를 살리는 게 중요하다. 문제는 2022년 대선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통합당에 권력을 맡기면 국민 삶을 개선시킬 것이라는,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안겨줄 것이라는 믿음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수권정당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할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을 통합당으로 바꿀 때처럼 정당명과 상징색을 교체하는 수준의 이미지 변신으로는 한계가 있다. 열린우리당은 2007년 대선 전망이 어두워지자 당을 해체한 후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다시 태어났다. 당의 상징색은 주황색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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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선은 530만표라는 기록적인 격차의 패배로 끝이 났고 정권을 되찾아오기까지 1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전국 단위 선거에서 연전연패를 이어가고 있는 통합당이 현실을 냉정히 진단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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